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라!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부들의 공동체

도시농업/농사 이야기 14

[제9화: 망종] 보리를 베고 콩을 심는다

[제9화: 망종] 보리를 베고 콩을 심는다— 5평 생태 텃밭, 전환의 절기를 살다 매실이 익기 시작한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잎 사이에 숨어 초록빛으로 달려 있으니,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면 매실 나무 아래 바닥에 열매가 몇 개 떨어져 있다. 그제야 올려다보면, 가지마다 제법 탐스럽게 영글어 있다. 망종(芒種)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매실은 빠르게 수확해야 한다. 망종 무렵의 매실은 당도와 산도가 동시에 절정을 이루는 시기라고 한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바로 지금이다. 매실청을 담그고 매실주를 담그는 살림의 손길이 부지런해지는 시절, 그 절기 한가운데 망종이 있다. 절기 이야기: 거두는 손과 심는 손이 동시에 바쁜 날망종(芒種)은 24절기 ..

[제8화: 소만] 찔레꽃 그늘 아래, 푸르게 부풀어 오르다.

소만, 차오르는 계절에 텃밭에서는산기슭 길가, 사람 손 닿지 않는 빈터마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은은한 향기의 찔레꽃, 옛 어른들은 찔레꽃 피는 시절을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은 진작에 바닥났고, 들판의 보리는 아직 패지 않아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산비탈에 올라 찔레순을 꺾어 입에 물었습니다. 갓 올라온 연한 새순은 풋풋하고 달큼해서 잠시나마 허기를 잊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맘때 재미삼아 꺾어 먹어보돈 찔레순의 맛이 아슴프레 기억이 날 듯합니다. 입하의 이팝나무가 흰쌀밥의 풍요 꿈꾸었다면, 소만의 찔레꽃은 그 풍요가 오기 직전, 가장 허기진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만물은 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으나, 정작 사람의 곳간은 ..

[소자농의 자연농사] 텃밭예술: 섞어짓고 사이짓기

밭은 줄 세우는 곳이 아니다텃밭에서 작물을 '줄 맞춰' 심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 줄이, 사실은 자연의 방식이 아닐 수 있거든요.섞어짓기와 사이짓기. 이 두 가지는 단순한 재배 기술이 아니에요. 밭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태계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한 방식입니다.섞어짓기 —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릴 때섞어짓기는 서로 다른 작물을 한 공간에 함께 심는 방식이에요. 키가 큰 작물 옆에 낮은 작물을 두고, 뿌리가 깊은 것 곁에 얕은 것을 붙여 심습니다. 땅속과 땅 위, 두 층을 동시에 쓰는 거죠.그렇게 심어두면 밭에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떤 작물은 옆에 있는 것의 병해충을 억제하고, 어떤 것은 흙속 미생물 환경을 바꿔놓고, 또 어떤 것은 이웃 작물의 생육을 조용히 돕습..

[제7화: 입하] 흰쌀밥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제7화: 입하] 흰쌀밥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5평 생태 텃밭, 여름을 세우는 법 흰쌀밥 한 그릇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도심 가로수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이팝나무가 온몸에 탐스러운 흰 꽃을 소복하게 달고 서 있습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이밥나무', 즉 흰쌀밥을 닮은 꽃이 피는 나무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 만큼, 꽃송이 하나하나가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쌀밥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매년 어김없이 입하(立夏) 무렵에 맞춰 꽃을 피웁니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땅은 이미 봄의 문턱을 슬그머니 넘어서 있습니다. 만물이 푸르게 일어서는 절기, 입하입니다. 절기 이야기: 짙어지는 녹음 속에서 여름을 세우다입하(立夏)는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보통 5월..

[도시텃밭농사팁] 뿌리가 게을러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5가지 비결

텃밭에 물을 너무 많이 주고 있었다뿌리가 게을러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5가지 비결 서울의 어느 큰 텃밭에서 하루 수도 사용량이 20톤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텃밭에 오면 제일 먼저 물부터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호스를 들고 한 줄 한 줄 작물을 살피며 물을 뿌리는 그 시간. 흙 냄새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반짝이고, 도시의 소음이 잠깐 멀어집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이, 더 자주 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물을 주며 만족하는 농부들처럼 작물에게, 텃밭에게 물주기는 좋기만 할까요? 물을 많이 받은 작물은 뿌리를 게을리한다뿌리는 물을 찾아 움직입니다. 깊이, 넓게, 더 먼 곳까지. 그런데 매일 지표면에 물이 넘치면 뿌리는 굳이 깊이 내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얕은 곳에 머물러도 충분하니까요. 얕은 뿌리..

[제6화: 곡우] 봄비가 씨앗을 깨웁니다

절기 이야기 : 곡우, 곡식을 살찌우는 비곡우(穀雨)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로, 청명과 입하 사이인 양력 4월 20일 무렵에 찾아옵니다. '곡식(穀)을 살찌우는 비(雨)'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름 하나에 이 절기의 의미가 다 담겨 있습니다. 봄의 마지막 절기이기도 합니다. 땅속 온도가 씨앗이 싹을 틔우기에 딱 알맞게 올라오는 이 무렵, 봄비까지 더해지면 씨앗은 드디어 기지개를 켭니다. 자연이 스스로 파종 신호를 보내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은 곡우를 아주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한 해 농사의 핵심인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일이 이 무렵에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볍씨를 담근 항아리에는 금줄을 쳐서 잡것의 접근을 막았고, 이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부정한 일을 삼가도록 하는 엄격한 금기..

[제5화: 청명] 하늘이 맑아지는 생명의 정점

절기 이야기: 청명, 온 세상이 맑고 밝게 빛나는 봄의 절정청명(淸明)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도달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보통 양력으로는 4월 4일이나 5일경에 해당하며, 말 그대로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긴 겨울의 잔재였던 음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고, 대지 위에 온전한 양기가 가득 차면서 가시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온 세상이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자연 현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청명 절기를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의 극치로 이해했습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유명한 속담은 이 시기 대지가 머금고 있는 수분과 온도가 식물의 성장에 얼마나 최적화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제4화: 춘분] 농사의 시작, 시농제

[제4화: 춘분] 농사의 시작, 시농제 춘분(春分)은 24절기 중 네 번째 절기로, 태양이 황도와 적도가 교차하는 춘분점에 위치하여 낮과 밤의 길이가 정확히 같아지는 시기입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음과 양의 기운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우주적 전환점이며, 대지 위에서는 긴 겨울의 침묵을 깨는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점입니다. "춘분 바람에 장독 깨진다"거나 "이월 바람에 검은 쇠뿔이 오그라진다"는 속담처럼, 이 시기에는 바람신(風神)의 시샘으로 매서운 꽃샘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지만, 텃밭의 흙 속에서는 이미 미생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르게 뿌려진 씨앗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합니다. 도시농부들에게 춘분은 단순히 달력상의 날짜가 아니라, 흙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 해의 풍요를 설계하는 가장 분주한 시간입니..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절기 이야기: 깨어나는 대지, 경칩의 생명력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위치하며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에서 6일경에 해당합니다.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놀랄 경(驚)'자에 '숨을 칩(蟄)'자를 씁니다. 이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들이 첫 번째 천둥소리에 놀라 땅 밖으로 나온다는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계칩(啓蟄)'이라 불렀으나, 한나라 경제의 이름인 '계(啓)'자를 피하기 위해 '경(驚)'자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계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만물이 생동하며 움트기 시작하는 경칩이라..

[제2화: 우수]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생명의 전령

[제2화: 우수]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생명의 전령 대지의 갈증을 해소하는 하늘의 선물, 우수(雨水)입춘(立春)이 봄의 관념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우수(雨水)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봄이 대지에 내려앉는 시기입니다.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이르는 이 무렵은 양력으로 대략 2월 18일이나 19일경에 해당하며, 이름 그대로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전이의 정점입니다. 선조들은 이 시기의 기상 변화를 단순히 온도의 상승으로만 보지 않고, 우주의 음기가 물러나고 양기가 지표면으로 스며들어 만물을 소생시키는 역동적인 생명 활동의 서막으로 이해했습니다. 우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속담인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은 긴 겨울 동안 대지를 짓누르던 동토의 제약이 해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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