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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망종] 보리를 베고 콩을 심는다

아메바!(김충기) 2026. 6. 5. 16:02

[제9화: 망종] 보리를 베고 콩을 심는다

— 5평 생태 텃밭, 전환의 절기를 살다

 

 

매실이 익기 시작한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잎 사이에 숨어 초록빛으로 달려 있으니,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면 매실 나무 아래 바닥에 열매가 몇 개 떨어져 있다. 그제야 올려다보면, 가지마다 제법 탐스럽게 영글어 있다. 망종(芒種)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매실은 빠르게 수확해야 한다. 망종 무렵의 매실은 당도와 산도가 동시에 절정을 이루는 시기라고 한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바로 지금이다. 매실청을 담그고 매실주를 담그는 살림의 손길이 부지런해지는 시절, 그 절기 한가운데 망종이 있다.

 

절기 이야기: 거두는 손과 심는 손이 동시에 바쁜 날

망종(芒種)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로, 양력 6월 6일 무렵에 든다. 한자를 풀면 '까끄라기 망(芒)'에 '씨앗 종(種)', 즉 '까끄라기 있는 곡식의 씨앗을 다루는 때'이다. 까끄라기란 보리 이삭 끝에 뾰족하게 솟은 가시 같은 털을 말한다. 보리를 베다 보면 그 까끄라기가 팔뚝을 찌르고, 목덜미에 박혀 온몸이 따갑다. 망종의 '망'은 그 따가움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망종을 5일씩 셋으로 나누어 변화를 읽었다.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알에서 깨어 나오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고 했다. 새소리가 달라지고 벌레가 깨어나는 것으로 계절의 전환을 읽었던 것이다.

 

망종을 둘러싼 속담은 전부 바쁨에 관한 것들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이 지나면 비가 잦아지고 보리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베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리 환갑은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보리가 씨앗으로 뿌려진 뒤 망종 무렵에야 비로소 한 해를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이다. "볼 때던 부지깽이도 일을 거든다"는 속담도 망종에서 나왔다. 아궁이 부지깽이까지 들고 나올 만큼 일손이 달린다는 뜻이다.

 

전통 농가에서 망종은 한 해 농사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절기였다. 보리를 베어내는 일과 논에 모를 옮겨 심는 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베어낸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곧바로 콩을 심었다. 끝남과 시작이 단 하루 사이에 이루어졌다. 거두는 손과 심는 손이 같은 밭에서 동시에 움직였다.

농사 이야기: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

망종은 도시 농부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

 

소만 무렵 상추와 쑥갓이 꽃대를 올리고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면, 망종 즈음에는 그 정리가 마무리된다. 봄 잎채소들이 완전히 역할을 다하고 물러나는 시간이다. 5평 텃밭 한편에서는 입하 때 심은 토마토와 고추가 첫 꽃을 피우고, 옥수수가 무릎을 넘어 자라며, 소만 때 심은 들깨가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소만 편에서 상추가 자리를 비워준 곳. 그 자리에 당근 씨앗을 뿌렸다면 이제 가는 떡잎이 두세 장씩 돋아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가늘고 연약해 보이지만, 당근은 원래 천천히 시작하는 작물이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뻗고 있는 중이다.

 

망종의 텃밭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처럼 이미 시작된 것들을 꼼꼼히 살피는 일이다. 그런 다음 비워진 자리에 콩 씨앗을 넣는다. 전통 농가의 망종과 다르지 않다. 거두고, 비우고, 심는다. 그 순서가 중요하다.

 

이 시기에 장마가 오기 전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흙을 어떻게 준비해 두느냐에 따라 텃밭이 폭우를 견디는 힘이 달라진다. 멀칭을 두텁게 해두면 빗방울이 직접 흙을 두드리는 것을 막고, 지표면이 굳는 것도 늦출 수 있다. 지렁이와 미생물이 사는 흙은 빗물을 머금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결국 흙을 살아있게 두는 것이 가장 든든한 장마 준비이다.

 

망종에 5평 텃밭에서 할 일

잎채소 마지막 정리: 아직 남아 있는 상추와 쑥갓 포기 중 꽃대가 완전히 올라온 것은 뿌리째 뽑아 자리를 비워준다. 뽑은 포기는 흙 위에 눕혀 멀칭재로 쓰면 된다.

 

  • 콩 씨앗 파종: 빈 자리에 메주콩, 밤콩, 서리태 등 콩류를 점뿌림한다. 씨앗 간격은 18~20cm, 줄 간격은 40~50cm가 적당하다. 한 자리에 씨앗을 2~3알씩 넣고 흙을 얕게 덮는다. 너무 깊이 묻으면 싹이 올라오는 데 힘이 든다.
  • 고구마 순 보식: 입하·소만 때 심은 고구마 순 중 말라 죽은 것이 있으면 새 순으로 채워넣는다. 망종이 사실상 마지막 보식 기회이다.
  • 옥수수·콩 북주기: 옥수수와 함께 심은 콩이 본잎 2~3장을 냈다면 줄기 아랫부분에 흙을 긁어 올려준다. 쓰러짐을 막고 뿌리가 잘 발달하도록 돕는다.
  • 목초액 등 천연 기피제 뿌리기: 기온이 오르면 진딧물과 각종 해충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목초액이나 마늘·고추 달인 물을 잎 뒷면까지 골고루 뿌려준다. 잎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곰팡이병이 생기기 쉬우니 오전 일찍 뿌리는 것이 좋다.
  • 감자·가지 잎 점검: 감자와 가지 잎에는 28점 무당벌레, 나방 애벌레, 알 덩어리가 붙어 있기 쉽다. 잎 뒷면을 꼼꼼히 살펴 손으로 털어내거나 잎째 잘라낸다.
  • 풀 매기: 땅콩밭과 고구마밭은 이 시기에 풀을 매지 않으면 나중에 수습이 어렵다. 풀을 뽑기보다 베어 눕히는 방식이 흙을 덜 다치게 한다.
  • 갓씨·대파씨·시금치씨 받아두기: 꽃대가 오른 채소들이 씨앗을 맺기 시작한다. 갈색으로 익으면 봉지를 씌워 씨앗을 받아 그늘에 말려둔다. 내년을 위한 씨앗이 된다.

 

비운 땅에 심는 것들 — 콩과 당근

 

자연에서 숲은 한 번도 비어있는 법이 없다. 한 식물이 쓰러지면 그 자리를 다른 식물이 채운다. 뿌리가 깊은 것과 얕은 것이, 키가 큰 것과 낮은 것이 서로 층을 이루며 공간을 나눠 쓴다. 5평 텃밭에서 콩과 당근을 함께 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콩, 텃밭의 흙을 살리는 작물

콩은 먹기 위해서만 심는 것이 아니다. 콩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다. 이 박테리아는 공기 중에 가득한 질소를 흙 속으로 끌어들여 식물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 화학비료 한 줌 쓰지 않고도 흙에 질소를 공급하는, 살아있는 비료 공장이다.

 

콩의 이 능력은 텃밭 전체를 이롭게 한다. 콩 옆에 심긴 다른 작물들도 덕을 본다. 입하 때부터 열심히 열매를 맺어온 고추와 토마토가 지쳐가는 시기에 콩이 흙에 영양을 돌려주는 것이다. 씨앗을 맺고 나서 콩 줄기를 뽑지 않고 그대로 잘라 흙 위에 눕혀두면, 뿌리에 붙은 혹까지 흙으로 돌아가 이듬해 토양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5평 텃밭에서 콩을 심을 때는 빈 고랑이나 다른 작물 사이사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면 된다. 별도의 콩밭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토마토 줄 끝, 고추 이랑 모서리, 베어낸 상추 자리. 어디든 햇빛이 드는 빈 틈이면 충분하다. 단,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파속 식물, 즉 마늘과 파 옆에는 콩을 심지 않는 것이 좋다. 파속 식물이 내뿜는 항생 물질이 콩 뿌리혹박테리아의 활동을 억제한다. 흙을 살리러 심은 콩의 힘을 파가 막아버리는 셈이다.

 

콩의 단점도 있다. 콩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진딧물과 응애가 잘 달라붙고, 특히 노린재는 콩깍지 속 씨앗에 직접 침을 꽂아 피해를 준다. 노린재는 약을 써도 잘 죽지 않는다. 대신 아침 이슬이 맺힌 이른 아침에 움직임이 둔해지니, 그때 빈 페트병으로 잡아내거나 직접 손으로 잡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당근, 땅속에서 조용히 일하는 작물

당근 씨앗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2~3주가 걸린다. 느리다.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씨앗을 위에 뿌렸다가 당근을 못 키우는 경우가 많다. 처음 텃밭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당근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도 이 기다림 때문이다.

 

당근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의 상태이다. 돌멩이나 덩어리진 흙이 있으면 뿌리가 갈라지거나 기형이 된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흙을 깊이 30cm 정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 당근 재배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비를 미리 넣어두었다면 흙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뿌리가 곧게 자란다.

 

솎음도 꼭 해야 한다. 씨앗을 너무 빽빽하게 뿌리면 포기들이 서로 뿌리를 나눠 가지려 경쟁하면서 결국 모두가 작은 뿌리를 만들게 된다. 본잎이 2~3장 나왔을 때 포기 간격이 5~6cm가 되도록, 다시 10cm가 되도록 두 번 솎아준다. 솎아낸 어린 당근잎은 쌉쌀하면서 향이 좋아 샐러드에 넣으면 별미이다.

 

당근에게 콩은 더없이 좋은 이웃이다. 콩 뿌리혹박테리아가 흙에 공급하는 질소는 빠르게 방출되지 않고 천천히 스며든다. 이것이 중요하다. 당근은 질소가 갑자기 많아지면 잔뿌리가 과도하게 생기거나 뿌리가 갈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콩이 제공하는 완만하고 꾸준한 질소 공급은 당근에게 딱 맞는 방식이다. 서로 뿌리 깊이도 다르다. 당근은 아래로 곧게 내려가고, 콩 뿌리는 비교적 얕게 퍼진다. 땅속 공간도 사이좋게 나눠 쓰는 것이다.

 

당근 밭 가장자리에는 메리골드를 함께 심어두면 좋다. 메리골드 뿌리에서 나오는 물질이 흙 속 해로운 선충을 억제한다. 향기는 진딧물과 당근파리를 멀리하는 효과도 낸다. 당근 이랑 끝자락에 한 줄씩 심어두면 꽃도 보고 해충도 막는 일석이조이다.

 

당근이 싫어하는 이웃도 있다. 이나 회향 같은 미나리과 허브는 당근과 같은 과(科)에 속해 같은 해충을 불러들이고 교잡(交雜)의 우려도 있다. 텃밭에 이 허브들이 있다면 당근과 멀찍이 떼어 심는 것이 좋다.

 

당근의 진짜 매력은 수확할 때까지 땅속에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상에서는 가는 잎만 조용히 자라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 뿌리는 꾸준히 굵어지고 있다. 흙이 건강하면 당근은 알아서 자란다. 흙이 살아있어야 당근도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당근이 텃밭 농부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결국 콩과 당근을 함께 심는 일은 위와 아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협력하는 작은 생태계를 텃밭 안에 만드는 일이다. 5평이라는 작은 땅에서도 이런 협력이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5평이기에 이 협력의 효과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음 연재에서는 해가 가장 긴 날, 하지(夏至)의 텃밭으로 이어진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텃밭에서 물을 어떻게 다루고, 흙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어떻게 보호하는지, 그리고 장마를 지나며 작물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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