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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농의 자연농사] 흙을 살린다는 것 — 미생물과 효소, 그 보이지 않는 농사꾼들

아메바!(김충기) 2026. 7. 15. 16:49

[소자농의 자연농사] 흙을 살린다는 것 — 미생물과 효소, 그 보이지 않는 농사꾼들

흙 한 줌에 뭐가 들었을까요.

 

손으로 집어 올리면 그냥 흙이에요. 차갑고 축축하고, 지렁이 한 마리쯤 꿈틀대면 다행이고. 근데 그 속에서 지금 이 순간도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일하고 있거든요. 세균, 곰팡이, 방선균, 균근균. 이들이 없으면 작물은 밥을 못 먹어요. 아무리 좋은 두엄을 넣어도, 아무리 비싼 비료를 줘도 소용없어요. 분해하는 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거든요.

 

저는 요즘 이 생각을 자주 해요. 내가 밭에서 하는 일이 진짜 농사인가, 아니면 미생물이 하는 농사를 방해하지 않는 것인가.

 

흙속의 노동자들 — 효소는 도구, 미생물은 일꾼

먼저 헷갈리기 쉬운 것부터 짚고 갈게요. 미생물과 효소, 이 둘은 달라요.

 

효소는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미생물이 몸 바깥으로 분비하는 단백질 촉매예요. 쉽게 말하면 도구죠. 셀룰라제는 풀의 세포벽을 녹이고, 프로테아제는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쪼개고, 포스파타제는 유기물에서 인을 떼어내요. 열쇠와 자물쇠처럼, 각각의 효소는 자기가 분해할 수 있는 것만 건드려요.

 

미생물은 그 도구를 쓰는 일꾼이에요. 살아있고, 증식하고, 환경에 반응해요. 온도가 맞고 수분이 있고 산소가 돌면 효소를 쏟아내고, 조건이 나빠지면 멈춰요. 아무리 좋은 효소가 흙 속에 있어도, 미생물이 살아있지 않으면 분해는 일어나지 않아요.

이게 핵심이에요. 우리가 밭에서 하는 모든 관리 — 물 주기, 피복, 유기물 넣기 — 는 결국 이 일꾼들이 살아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거예요.

 

뿌리까지 밥이 닿는 네 가지 경로

미생물이 어떻게 영양분을 작물에게 전달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게요.

 

첫째는 분해예요. 낙엽, 풀, 두엄 같은 유기물을 세균과 곰팡이가 잘게 쪼개면 포도당, 아미노산, 인산, 질산이 나와요. 이게 토양 용액에 녹아서 뿌리가 빨아들이는 거예요. 이 과정을 광물화라고 해요. 자연이 만든 비료 공장이에요.

 

둘째는 균근균이에요. 곰팡이의 일종인 균근균은 식물 뿌리 속으로 균사를 뻗어요. 뿌리가 닿지 못하는 수십 센티미터 너머까지 탐색하면서 인, 아연, 구리를 유기산으로 녹여서 뿌리로 직접 배달해줘요. 인이 부족한 흙에서는 균근균이 없으면 작물이 인의 80% 이상을 흡수 못 한다는 연구도 있어요. 그 대신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균근균한테 줘요. 서로 먹여 살리는 거죠.

 

셋째는 질소 고정이에요. 공기 중 78%가 질소지만 식물은 그걸 바로 못 써요. 흙속의 질소고정세균이 질소분해효소를 써서 공기 중 질소 분자를 암모니아로 바꾸고, 그게 질산염으로 전환돼야 작물이 흡수할 수 있어요. 콩과 식물 뿌리에 사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대표적인 예예요. 화학비료 없이도 질소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공장이에요.

 

넷째는 식물호르몬이에요. 일부 미생물은 뿌리 주변에서 옥신, 지베렐린 같은 식물호르몬을 직접 분비해요. 뿌리 발달을 돕고, 항생물질을 내보내서 병원균도 막아줘요. 철분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주기도 하고요.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돌아가는 곳이 건강한 밭이에요.

 

연팽술에서 라사냐까지 — 농법마다 다른 전략

흥미로운 건, 전통 농법이든 현대 자연농이든 결국 이 미생물-효소-작물 연결 고리 중 어느 지점을 강화할 것인가의 싸움이라는 거예요.

 

《농정신편》의 토성변에 보면 식토(埴土)라는 흙이 나와요. 금속이 부식되어 유기물과 달라붙은 흙인데, 작물이 발생하는 힘은 있지만 뿌리가 잘 못 자라요. 돌도 없어서 도기나 벽돌 굽는 데 쓰는 흙이에요. 이 식토를 밭으로 쓰려면 흙을 곱게 부수고 연팽술(軟膨術)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연팽술은 풀·짚·두엄을 흙에 묻어서 토양을 부드럽고 무르게 만드는 방법이에요. 사람이 먼저 흙의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 다음은 미생물이 알아서 해요. 토착 세균, 곰팡이, 방선균이 활성화되면서 셀룰라제와 프로테아제를 쏟아내고,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생긴 공극이 흙을 계속 부드럽게 유지해줘요. 균근균도 활발해지고요.

 

탄소농법은 덮개작물의 뿌리가 핵심이에요. 뿌리가 매일 유기산과 당을 분비하면서 미생물을 지속적으로 먹여요. 효소가 장기 축적되고 부식질이 쌓이면서 수년간 서서히 양분이 공급돼요. 연팽술이 일회성 준비작업이라면, 탄소농법은 밭 자체를 장기 공장으로 만드는 거예요.

 

자연농은 외부에서 미생물을 넣지 않아요. 그 땅에 이미 적응한 자생 세균과 곰팡이를 쓰거든요. 이들은 그 토양의 유기물에 딱 맞는 효소 세트를 갖고 있어서 분해 효율이 높아요. 지역 토양-식물-미생물이 오랫동안 함께 진화한 네트워크예요. 외부 투입 없이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게 자연농이 지향하는 거예요.

 

라사냐 농법은 층위가 달라요. 표면에서는 호기성 세균이, 중간층에서는 곰팡이가, 아래층에서는 혐기성 미생물이 차례로 활성화돼요. 각 층마다 다른 효소가 순차적으로 분비되는 거예요. 여기에 지렁이가 층을 통과하면서 유기물을 삼키고 배출하면 분변토가 생기는데, 이 분변토의 미생물 활성도는 일반 흙의 다섯 배가 넘어요. 이미 분해된 질산, 인산, 칼슘이 바로 흡수 가능한 형태로 들어있거든요.

 

Fiber Farming은 섬유질 많은 작물 잔재물을 깊이 갈아 넣는 방식인데, 문제가 있어요. C/N비, 그러니까 탄소 대 질소 비율이 높아서 미생물이 분해하려면 주변 흙에서 질소를 빌려와야 해요. 분해가 느리고 질소 추가 공급이 필요해요. 대신 분해 후 남는 공극이 동결과 융해를 거치면서 흙의 물리 구조를 장기적으로 개선해줘요.

 

밭은 이미 알고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올게요. 내가 밭에서 하는 일이 진짜 농사인가.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미생물이 살아서 일하는 조건만 갖춰지면, 작물한테 밥 주는 건 흙이 알아서 한다고. 내 역할은 그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거예요. 깊이 갈지 않고,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유기물을 걷어내지 않고.

 

흙은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밭 한쪽에 연팽술로 짚과 두엄을 묻어두고, 옆에는 덮개작물을 심은 자리가 있어요. 봄이 되면 그 두 자리가 달라 보여요. 뭔가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흙 색깔이 다르고 냄새가 달라요. 그 차이가 지금 여기서 말한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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