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라!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부들의 공동체

절기 6

[제11화: 소서] 비와 풀과 함께 사는 법

[제11화: 소서] 비와 풀과 함께 사는 법 하룻밤 사이에 버섯이 돋았다.비가 며칠 이어진 뒤 아침에 텃밭에 나가보면, 멀칭해둔 마른 풀 더미 위로 자잘한 버섯이 우산을 펴고 올라와 있다. 어제까지 없던 것인데 심은적도 없는 녀석이 올라왔으니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이다. 버섯은 죽은 유기물(리그닌, 목질)을 분해하는 균류(미생물)이다. 마른 풀과 낙엽을 흙으로 되돌리는 일을 한다. 흙 속에서 그 일이 한창이라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흙의 살림이, 장마 습기를 빌려 잠깐 얼굴을 내민 것이다. 소서(小暑)의 텃밭은 그렇게 젖은 채로 부산하다.절기 이야기: 작은 더위, 그러나 만만치 않은소서(小暑)는 24절기 중 열한 번째 절기로, 양력 7월 7일 무렵에 든다. 한자를 풀면 '..

[제10화: 하지] 가장 긴 낮, 가장 바쁜 손

[제10화: 하지] 가장 긴 낮, 가장 바쁜 손도시 텃밭, 빛의 절정에서 흙을 지키다해가 좀처럼 지지 않는다.저녁 일곱 시가 넘었는데도 텃밭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다. 일을 마치고 나와도 한참을 더 손볼 수 있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하지(夏至)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해는 다시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한다. 자연의 모든 절정이 그렇듯이, 가장 환한 정점에서 이미 기우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밭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일은 감자를 캐는 일이다. 봄에 심은 감자가 땅속에서 알이 다 굵었다. 잎과 줄기가 누렇게 시들기 시작하면 그것이 캐라는 신호이다. 흙을 살살 헤치면 흙빛과 똑같은 감자알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한 해 농사 중 가장 손맛 좋은 순간이다. 그래서 봄에 심어 이맘때 캐는 감자를..

[제8화: 소만] 찔레꽃 그늘 아래, 푸르게 부풀어 오르다.

소만, 차오르는 계절에 텃밭에서는산기슭 길가, 사람 손 닿지 않는 빈터마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은은한 향기의 찔레꽃, 옛 어른들은 찔레꽃 피는 시절을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은 진작에 바닥났고, 들판의 보리는 아직 패지 않아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산비탈에 올라 찔레순을 꺾어 입에 물었습니다. 갓 올라온 연한 새순은 풋풋하고 달큼해서 잠시나마 허기를 잊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맘때 재미삼아 꺾어 먹어보돈 찔레순의 맛이 아슴프레 기억이 날 듯합니다. 입하의 이팝나무가 흰쌀밥의 풍요 꿈꾸었다면, 소만의 찔레꽃은 그 풍요가 오기 직전, 가장 허기진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만물은 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으나, 정작 사람의 곳간은 ..

[제5화: 청명] 하늘이 맑아지는 생명의 정점

절기 이야기: 청명, 온 세상이 맑고 밝게 빛나는 봄의 절정청명(淸明)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도달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보통 양력으로는 4월 4일이나 5일경에 해당하며, 말 그대로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긴 겨울의 잔재였던 음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고, 대지 위에 온전한 양기가 가득 차면서 가시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온 세상이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자연 현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청명 절기를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의 극치로 이해했습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유명한 속담은 이 시기 대지가 머금고 있는 수분과 온도가 식물의 성장에 얼마나 최적화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절기 이야기: 깨어나는 대지, 경칩의 생명력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위치하며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에서 6일경에 해당합니다.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놀랄 경(驚)'자에 '숨을 칩(蟄)'자를 씁니다. 이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들이 첫 번째 천둥소리에 놀라 땅 밖으로 나온다는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계칩(啓蟄)'이라 불렀으나, 한나라 경제의 이름인 '계(啓)'자를 피하기 위해 '경(驚)'자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계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만물이 생동하며 움트기 시작하는 경칩이라..

[제2화: 우수]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생명의 전령

[제2화: 우수]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생명의 전령 대지의 갈증을 해소하는 하늘의 선물, 우수(雨水)입춘(立春)이 봄의 관념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우수(雨水)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봄이 대지에 내려앉는 시기입니다.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이르는 이 무렵은 양력으로 대략 2월 18일이나 19일경에 해당하며, 이름 그대로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전이의 정점입니다. 선조들은 이 시기의 기상 변화를 단순히 온도의 상승으로만 보지 않고, 우주의 음기가 물러나고 양기가 지표면으로 스며들어 만물을 소생시키는 역동적인 생명 활동의 서막으로 이해했습니다. 우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속담인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은 긴 겨울 동안 대지를 짓누르던 동토의 제약이 해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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