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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농의 자연농사] 섞어짓고 사이짓기

아메바!(김충기) 2026. 6. 9. 08:29

[소자농의 자연농사] 섞어짓고 사이짓기 — 밭은 비어있을 틈이 없다

 

밭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잇는 거예요

텃밭에서 말하는 '섞어짓기'와 '사이짓기'가 단순한 재배 기술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겠어요. 그건 밭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태계로 바라보는 태도거든요. 수확량 중심의 단작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작물들이 어울리며 균형을 이루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과정 — 저는 그게 텃밭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심는 때가 같아야, 밭이 어울린다

섞어짓기에서 가장 먼저 따지는 건 파종 시기와 수확 시기예요. 함께 심고 함께 거둘 수 있는 것들끼리 맞춰야 밭이 엉키지 않거든요. 봄철엔 상추 같은 잎채소끼리, 여름철엔 고추·토마토·가지처럼 과채류끼리 어울려요. 키 높이나 뿌리 깊이를 고려하는 건 그다음 이야기예요. 그렇게 맞춰 두면 작물끼리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하거든요. 어떤 건 병해충을 억제하고, 어떤 건 흙속 미생물 환경을 살리고, 또 어떤 건 서로의 자람을 조용히 보완해줘요. 밭이 단일 작물의 열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들이 어울려 흐르는 하나의 풍경이 되는 거죠.

 

공간도 시간도, 빈틈을 두지 않는다

사이짓기는 주작물의 생육 공간과 시간의 틈을 쓰는 지혜예요. 천천히 자라는 작물 사이에 빠르게 크는 걸 끼워 넣거나, 수확 전후의 시간차를 이용해 다음 작물을 이어 심는 거죠. 햇빛과 공간, 물과 양분의 공백을 줄이면서 밭의 리듬이 끊기지 않게 유지합니다. 밭은 항상 무언가가 자라고 순환하는 상태예요.

 

3월에 저는 고구마밭 이랑을 두 줄 만들어요. 가운데 고랑에는 양배추를, 양쪽 가장자리 고랑에는 시금치를 줄뿌림합니다. 양배추나 시금치 같은 잎채소는 물을 좋아하잖아요. 지표면이 낮은 고랑 쪽에 두면 축축해서 잘 자라거든요. 5월 초순이 되면 시금치 심은 자리 가까이에 토마토 모종을 넣고, 중순에는 고구마 모종을 심어요. 심고 나서 신문지 한 장을 덮어두면 7일쯤 뒤에 벗겨도 별도로 물을 안 줘도 뿌리가 잘 활착됩니다. 이게 바로 공간과 시간을 함께 쓰는 사이짓기예요.

 

조율하는 사람, 그게 농부예요

이런 방식이 단순히 효율을 높이려는 기술이냐고요? 저는 그보다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태도에 가깝다고 봐요. 풀과 벌레, 미생물과 작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루듯, 농부는 그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조율하는 역할이거든요. 섞어짓기와 사이짓기는 계획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에 맡기는 여백을 포함해요.

 

작물을 줄 세워 키우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리게 두어 살아있는 풍경을 만드는 일. 밭에서 일하다 보면 그게 결국 제가 하는 일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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