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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농사 이야기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by 아메바!(김충기) 2026. 2. 26.

[제3화: 경칩] 땅속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 도시텃밭 강낭콩 이야기

 

절기 이야기: 깨어나는 대지, 경칩의 생명력

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위치하며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에서 6일경에 해당합니다.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놀랄 경(驚)'자에 '숨을 칩(蟄)'자를 씁니다. 이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들이 첫 번째 천둥소리에 놀라 땅 밖으로 나온다는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계칩(啓蟄)'이라 불렀으나, 한나라 경제의 이름인 '계(啓)'자를 피하기 위해 '경(驚)'자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계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만물이 생동하며 움트기 시작하는 경칩이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조상들은 경칩 무렵이 되면 산이나 논의 고인 물을 찾아가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개구리나 도롱뇽의 알을 건져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기운을 얻으려는 소박한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경칩은 '흙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날로 여겨졌습니다.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흙벽을 쌓으면 한 해 동안 탈이 없고 집안에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신이 있어, 집안 구석구석을 정비하고 흙을 만지며 봄맞이 단장을 했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속담 중에는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해동이 시작되면서 산천초목이 깨어나 본격적인 봄맞이 준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또 "경칩 지난 게로군"이라는 말은 입을 떼지 않던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경칩은 침묵의 겨울을 끝내고 생명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역동적인 전환점입니다.

 

농사 이야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경칩의 대지

전통적인 농가에서 경칩은 농기구를 정비하고 한 해 농사의 밑그림을 그리는 매우 바쁜 시기였습니다. 『성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경칩이 지난 후 첫 번째 해일(亥日)에 선농단에서 농업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선농제(先農祭)'를 거행했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왕은 직접 '적전(籍田)'이라 불리는 밭을 갈며 백성들에게 농사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해 보였습니다. 이는 국가의 근간이 농업에 있음을 천명하는 신성한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 시대에 경칩의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릅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이 짧아지고 기온이 일찍 상승하면서 개구리들이 절기보다 한 달이나 이른 1월 말이나 2월 초에 잠에서 깨어나는 '생태적 엇박자'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꽃은 일찍 피는데 이를 수정해줄 꿀벌들이 아직 활동하지 않거나, 갑작스러운 꽃샘추위로 인해 일찍 깨어난 어린 생명들이 동해를 입는 등 기상 이변은 농사짓기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현대적인 도시농사에서 경칩은 이러한 기후 변화를 직시하고 탄소 순환을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땅을 깊게 갈아엎어 탄소를 배출하기보다는, 토양 미생물의 생태계를 보존하면서 유기물을 투입해 대기 중의 탄소를 흙속에 가두는 '생태적 관리'가 강조되는 시점입니다. 이제 농사는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행위를 넘어,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하고 자연의 속도에 인간의 삶을 맞추어가는 고귀한 성찰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텃밭에서 할 일: 5평 생태 텃밭의 토양 설계와 준비

5평(약 16.5제곱미터)이라는 작은 공간은 도시농부에게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경칩 시기에 도시농부가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주안점을 토양 관리와 관찰을 중심으로 안내합니다.

토양의 삼상 구조 이해와 관찰

좋은 흙이란 단순히 거름이 많은 흙이 아닙니다. 식물이 숨 쉬고 자라기에 가장 좋은 흙은 고체 상태의 흙(고상), 수분(액상), 공기(기상)의 비율이 조화로운 '삼상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비율은 고상 40~50%, 액상 25~30%, 기상 25~30%입니다. 경칩 무렵 텃밭에 나가 흙을 한 움큼 쥐어보세요. 손바닥으로 가볍게 쥐었을 때 덩어리가 형성되면서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부드럽게 부서지는 상태라면 통기성과 보습성이 균형을 이룬 훌륭한 상태입니다. 만약 흙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유기물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며, 진흙처럼 끈적거린다면 물 빠짐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석회 시비와 산도 교정

우리나라 토양의 90% 정도는 산성 토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성도가 강해지면 작물이 영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미생물의 활동이 위축됩니다. 경칩 무렵에는 퇴비를 넣기 1~2주 전에 고토석회나 패화석(조개껍데기 가루)을 뿌려 흙의 산도를 중성(pH 6.5~7.0)으로 맞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5평 기준으로 약 1~1.5kg 정도를 고루 뿌리고 흙과 잘 섞어줍니다. 주의할 점은 석회와 퇴비를 동시에 주면 퇴비 속의 질소 성분이 가스가 되어 날아가 버리므로 반드시 시간 차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기구 정비와 씨앗 선별

겨우내 창고에 두었던 호미, 삽, 쇠갈퀴의 녹을 닦아내고 손잡이가 헐겁지는 않은지 점검합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경칩에 행하던 가장 중요한 농사 준비 중 하나입니다. 또한 올해 심을 강낭콩을 비롯한 씨앗들을 꺼내어 보관 상태를 확인합니다. 씨앗 봉투에 적힌 생산 연도를 확인하고, 껍질에 광택이 있고 상처가 없는 튼실한 씨앗을 골라둡니다.

 

생태 텃밭의 보석, 강낭콩

경칩 이후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 사이에 파종을 준비하는 강낭콩은 5평 텃밭에서 단백질 공급원이자 땅을 살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번 연재의 핵심 작물인 강낭콩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봅니다.

강낭콩의 종류와 특징

강낭콩은 줄기가 뻗어 나가는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구분 형태적 특징 생육 및 수확 5평 텃밭 활용 팁
왜성종
(앉은뱅이종)
키가 50cm 내외로 직립 재배 기간이 60~70일로 짧고 일시에 수확 좁은 공간에서 관리가 쉽고 장마 전 수확 가능
만성종
(덩굴성종)
줄기가 2m 이상 뻗음 재배 기간이 길고 서리 올 때까지 지속 수확 수직 공간 활용에 유리, 튼튼한 지주대 필수

토종 품종 중에는 '호랑이콩(얼룩이콩)'이 가장 유명합니다. 알에 선명한 붉은 무늬가 있어 호랑이를 연상시키는데, 맛이 밤처럼 포근포근하고 달콤합니다. 또한 선비들이 공부하며 즐겨 먹었다는 '선비잡이콩'은 고소한 맛이 일품이며 내병성이 강해 도시텃밭에 적합합니다.

생태적 재배법

강낭콩은 서늘한 기후(10~25도)를 좋아하지만, 서리에는 매우 취약합니다. 중부 지방 기준으로 3월 말에서 4월 초에 파종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너무 일찍 심어 본잎이 나온 상태에서 서리를 맞으면 식물이 죽거나 생육이 크게 뒤처집니다.

  • 밭 만들기: 배수가 잘되는 식양토가 가장 좋습니다. 강낭콩은 습해에 약하므로 두둑의 높이를 15~20cm 정도로 높게 만듭니다.
  • 파종: 점뿌림 방식을 권장합니다. 왜성종은 30cm, 만성종은 40cm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한 구멍에 씨앗을 2~3알씩 넣습니다. 깊이는 씨앗 크기의 2~3배인 약 3cm가 적당합니다.
  • 북주기: 싹이 터서 본잎이 나올 때쯤 흙을 돋워주면 뿌리 발달이 좋아지고 쓰러짐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수분 관리: 꽃이 필 때까지는 다소 건조하게 관리하여 뿌리가 깊게 뻗게 유도하고, 꼬투리가 맺히기 시작하면 물을 충분히 주어 알이 굵어지게 돕습니다.

텃밭 내 역할: 질소 고정과 땅 살리기

강낭콩의 가장 위대한 역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납니다. 강낭콩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라는 유익한 미생물이 공생합니다. 이 미생물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질소를 흡수하여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으로 바꾸어 줍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영양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수확 후 뿌리를 그대로 흙에 남겨두면 다음 작물을 위한 훌륭한 천연 질소 비료가 됩니다. 척박한 5평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비료 공장'인 셈입니다.

동반식물(Companion Plants)과의 공존

강낭콩은 혼자 자라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훨씬 건강합니다.

  • 옥수수와의 상생: 전통적인 '세 자매 농법'의 핵심입니다. 옥수수는 강낭콩이 타고 올라갈 튼실한 지지대가 되어주고, 강낭콩은 옥수수의 뿌리에 질소를 공급합니다.
  • 오크라와의 우정: 키가 크고 잎이 넓은 오크라는 무더운 여름날 강낭콩에게 적절한 그늘을 제공합니다. 두 작물을 섞어 심으면 서로의 병충해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 피해야 할 식물: 마늘, 양파, 부추와 같은 파 속 식물은 강낭콩의 성장을 저해하므로 이웃해서 심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강낭콩의 든든한 조력자, 오크라

강낭콩의 짝꿍으로 소개할 두 번째 작물은 오크라입니다.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오크라는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지는 한국의 텃밭에서 강낭콩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오크라의 특징과 재배

오크라는 노란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텃밭의 미관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입니다. 꼬투리를 자르면 별 모양이 나타나 아이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 재배 시기: 온도가 충분히 올라간 5월에 모종을 심는 것이 좋지만, 경칩인 지금 씨앗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 생육 환경: 햇빛을 매우 좋아하며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랍니다. 키가 1.5~2m까지 자라므로 지지대가 필요 없는 튼튼한 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반 식물로서의 가치

오크라는 강낭콩에게 '수직적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강낭콩이 바닥 쪽을 덮으며 자랄 때 오크라는 위로 솟아올라 공간의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또한 오크라의 끈적한 성분은 일부 해충을 유인하여 콩으로 가는 피해를 줄여주는 '희생 작물'의 역할도 겸합니다. 5평 텃밭의 중앙부에 오크라를 심고 그 주변으로 강낭콩을 배치하면 입체적인 생태 정원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퇴비와 좋은 흙의 상관관계: 순환하는 생명의 고리

생태적인 도시농사에서 퇴비는 단순히 식물의 '밥'이 아닙니다. 퇴비는 흙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토양 생태계를 완성하는 핵심 매개체입니다.

퇴비가 흙의 물리적 성질을 바꾸는 원리

홑알구조의 흙은 미세한 가루가 날리고 비가 오면 진흙이 되어 공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때 퇴비 속의 유기물이 들어가면 미생물들이 이를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미생물이 분해 과정에서 내뿜는 끈적한 분비물은 흙 알갱이들을 포도송이처럼 뭉치게 하여 '떼알구조'를 만듭니다. 이렇게 형성된 큰 공극 사이로 공기가 통하고(통기성), 작은 공극 사이로 물이 저장됩니다(보습성). 즉, 퇴비는 흙의 체질을 개선하여 식물이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안식처를 만듭니다.

미생물의 활성화와 양분 보존력

흙속의 유기물은 미생물의 먹이이자 집입니다. 유기물이 풍부한 흙 1g에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이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이온 상태의 영양분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유기물은 흙보다 양분을 붙드는 힘(보비력)이 수십 배 강하여, 비가 와도 영양분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꽉 잡아두는 저수지 역할을 합니다.

화학 비료가 아닌 유기 질 퇴비를 써야 하는 이유

화학 비료는 식물에게 직접 영양을 주지만, 흙속 미생물을 굶겨 죽이고 흙의 떼알구조를 파괴하여 흙을 딱딱하게 만듭니다. 반면 텃밭 부산물이나 가축의 분뇨를 발효시켜 만든 유기 질 퇴비는 미생물을 키우고 흙을 살려 지속가능한 생산을 가능케 합니다. 5평 텃밭 한구석에 퇴비함을 만들어 풀과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는 것은, 자원의 순환을 실천하는 도시농부의 가장 고귀한 의식입니다.

탄질비(C/N율)의 지혜

퇴비를 직접 만들 때 기억해야 할 숫자는 '30'입니다. 미생물이 분해 활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탄소(C)와 질소(N)의 비율이 30:1이기 때문입니다. 말른 낙엽이나 볏짚(탄소원)과 신선한 채소 찌꺼기나 풀(질소원)을 적절히 섞어주면 향긋한 흙 냄새가 나는 명품 퇴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배할 강낭콩 줄기는 탄질비가 약 27.5로, 그 자체로도 아주 훌륭한 퇴비 재료가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완연한 봄기운이 대지를 덮는 '춘분(4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펴고 진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춘분의 햇살 아래에서 펼쳐질 텃밭의 변화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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