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라!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부들의 공동체

도시농업 61

[제8화: 소만] 찔레꽃 그늘 아래, 푸르게 부풀어 오르다.

소만, 차오르는 계절에 텃밭에서는산기슭 길가, 사람 손 닿지 않는 빈터마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은은한 향기의 찔레꽃, 옛 어른들은 찔레꽃 피는 시절을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은 진작에 바닥났고, 들판의 보리는 아직 패지 않아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산비탈에 올라 찔레순을 꺾어 입에 물었습니다. 갓 올라온 연한 새순은 풋풋하고 달큼해서 잠시나마 허기를 잊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맘때 재미삼아 꺾어 먹어보돈 찔레순의 맛이 아슴프레 기억이 날 듯합니다. 입하의 이팝나무가 흰쌀밥의 풍요 꿈꾸었다면, 소만의 찔레꽃은 그 풍요가 오기 직전, 가장 허기진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만물은 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으나, 정작 사람의 곳간은 ..

[소자농의 자연농사] 봄에 신선함을 담은 상추열무김치

봄밭에서 바로 담그는 상추열무김치봄밭에서 막 올라온 열무와 상추로 겉절이 김치를 담갔습니다.오래 묵혀 저장해서 먹는 반찬이 아닙니다. 갓 딴 푸성귀의 향과 질감을 그날 바로 즐기는 데 매력이 있는 김치거든요. 아삭한 열무와 부드러운 상추. 이 둘의 대비가 봄철 밥상에 생기를 더합니다.열무는 씨알텃밭에서 자란 토종 벗들무시, 상추는 평창적상추입니다. 열무밭 헛골에는 커피박을 뿌렸어요. 벌레를 기피시키는 방식입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오지 않게 하는 거죠. 절이는 시간이 전부다열무는 굵은소금으로 40분 절입니다. 딱 그 시간이 적당해요. 풋내는 가라앉고, 줄기 속살은 살아있거든요. 중간에 한두 번 뒤집어 절임이 고르게 되도록 합니다.헹굴 때는 찬물에 가볍게 한 번. 너무 세게 짜지 말고 물기만 빼주세요.상..

[소자농의 자연농사] 텃밭예술: 섞어짓고 사이짓기

밭은 줄 세우는 곳이 아니다텃밭에서 작물을 '줄 맞춰' 심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 줄이, 사실은 자연의 방식이 아닐 수 있거든요.섞어짓기와 사이짓기. 이 두 가지는 단순한 재배 기술이 아니에요. 밭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태계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한 방식입니다.섞어짓기 —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릴 때섞어짓기는 서로 다른 작물을 한 공간에 함께 심는 방식이에요. 키가 큰 작물 옆에 낮은 작물을 두고, 뿌리가 깊은 것 곁에 얕은 것을 붙여 심습니다. 땅속과 땅 위, 두 층을 동시에 쓰는 거죠.그렇게 심어두면 밭에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떤 작물은 옆에 있는 것의 병해충을 억제하고, 어떤 것은 흙속 미생물 환경을 바꿔놓고, 또 어떤 것은 이웃 작물의 생육을 조용히 돕습..

[제7화: 입하] 흰쌀밥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제7화: 입하] 흰쌀밥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5평 생태 텃밭, 여름을 세우는 법 흰쌀밥 한 그릇이 나무에 피었습니다. 도심 가로수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이팝나무가 온몸에 탐스러운 흰 꽃을 소복하게 달고 서 있습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이밥나무', 즉 흰쌀밥을 닮은 꽃이 피는 나무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 만큼, 꽃송이 하나하나가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쌀밥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매년 어김없이 입하(立夏) 무렵에 맞춰 꽃을 피웁니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땅은 이미 봄의 문턱을 슬그머니 넘어서 있습니다. 만물이 푸르게 일어서는 절기, 입하입니다. 절기 이야기: 짙어지는 녹음 속에서 여름을 세우다입하(立夏)는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보통 5월..

[소자농의 자연농사] 1년, 흙을 되살리는 시간

1년, 흙을 되살리는 시간무경운·유기물 순환으로 토양을 바꾼 씨알텃밭의 기록소자농 유형민 공동체 씨알텃밭의 한 구성원이 지난 1년간 실천한 농법은 단순한 재배 기술의 전환을 넘어, 토양을 대하는 관점 자체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작년 4월부터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無耕耘) 방식을 택했고, 외부에서 공급되는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버려지는 것들이 밭의 자원이 되다대신 도시에서 버려지는 유기물을 자원으로 받아들였다. 백화점에서 발생하는 폐과일과 채소는 밭의 표면을 덮는 피복재로 사용되었고, 버섯농장에서 배출되는 폐배지(廢培地)는 일정한 주기로 토양 위에 쌓였다. 20평 기준 분기마다 1~2톤백에 달하는 양이 투입되었으니, 이는 단순한 보조적 투입이 아니라 토양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

[도시텃밭농사팁] 뿌리가 게을러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5가지 비결

텃밭에 물을 너무 많이 주고 있었다뿌리가 게을러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5가지 비결 서울의 어느 큰 텃밭에서 하루 수도 사용량이 20톤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텃밭에 오면 제일 먼저 물부터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호스를 들고 한 줄 한 줄 작물을 살피며 물을 뿌리는 그 시간. 흙 냄새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반짝이고, 도시의 소음이 잠깐 멀어집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이, 더 자주 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물을 주며 만족하는 농부들처럼 작물에게, 텃밭에게 물주기는 좋기만 할까요? 물을 많이 받은 작물은 뿌리를 게을리한다뿌리는 물을 찾아 움직입니다. 깊이, 넓게, 더 먼 곳까지. 그런데 매일 지표면에 물이 넘치면 뿌리는 굳이 깊이 내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얕은 곳에 머물러도 충분하니까요. 얕은 뿌리..

퍼머컬처 읽기 네번째 모임 - 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숲은,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이 아닙니다. 바하마의 작은 모래톱, 샌디케이. 지름이 수십 걸음에 불과한 이 섬에 처음 내려앉은 것은 바닷새였습니다. 배설물이 모래를 조금 비옥하게 만들었고, 바람이 씨앗을 날랐습니다. 극한을 견디는 선구 식물이 먼저 뿌리내렸고, 그 그늘 아래 더 섬세한 것들이 자라났습니다. 수백 년이 흐르며 동심원의 작은 숲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투입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거기 있습니다.이번 모임에서 읽은 『퍼머컬처 매뉴얼』 10장부터 13장까지는, 사실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망가지지 않는가. 그리고 망가져도 어떻게 돌아오는가. 이번 읽기모임에 내용을 요약하자..

[소자농의 자연농사] 계양구 상야동에서 흙과 함께, 삶의 균형을 되찾다

자급하는 씨알텃밭 생활계양구 상야동에서 흙과 함께, 삶의 균형을 되찾다 - 소자농 유형민 자급하는 텃밭 생활은 단순한 취미나 식량 확보의 수단을 넘어, 인간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동양적 생활 철학의 실천 형태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풍요와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 인간을 시장과 기술 체계에 깊이 종속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식생활의 왜곡과 건강의 불균형, 그리고 삶의 주도권 상실이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텃밭을 통한 자급 생활은 외부 의존을 절제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 최소 단위의 자립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줄이는 것동양 사상에서 자급의 근본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줄이는 것'에 있다...

[제6화: 곡우] 봄비가 씨앗을 깨웁니다

절기 이야기 : 곡우, 곡식을 살찌우는 비곡우(穀雨)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로, 청명과 입하 사이인 양력 4월 20일 무렵에 찾아옵니다. '곡식(穀)을 살찌우는 비(雨)'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름 하나에 이 절기의 의미가 다 담겨 있습니다. 봄의 마지막 절기이기도 합니다. 땅속 온도가 씨앗이 싹을 틔우기에 딱 알맞게 올라오는 이 무렵, 봄비까지 더해지면 씨앗은 드디어 기지개를 켭니다. 자연이 스스로 파종 신호를 보내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은 곡우를 아주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한 해 농사의 핵심인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일이 이 무렵에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볍씨를 담근 항아리에는 금줄을 쳐서 잡것의 접근을 막았고, 이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부정한 일을 삼가도록 하는 엄격한 금기..

[제5화: 청명] 하늘이 맑아지는 생명의 정점

절기 이야기: 청명, 온 세상이 맑고 밝게 빛나는 봄의 절정청명(淸明)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도달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보통 양력으로는 4월 4일이나 5일경에 해당하며, 말 그대로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긴 겨울의 잔재였던 음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고, 대지 위에 온전한 양기가 가득 차면서 가시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온 세상이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자연 현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청명 절기를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의 극치로 이해했습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유명한 속담은 이 시기 대지가 머금고 있는 수분과 온도가 식물의 성장에 얼마나 최적화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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