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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지역탐방기

[지역탐방 11] 뜨거운 도시농부들의 도시 - 부산

by 조이 :-) 2025. 7. 27.

2024년 4월부터 시작한 도시농업탐방 사업을 그 해 11월 부산 방문 일정으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산 도시농부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늦게나마 전한다. 

 

 

부산 기장군 연수농장 전경

 

 

도시농업관리사를 위한 든든한 기반  사단법인 전국도시농업관리사연합회

 

2024년 11월 4일 부산 기장에서 전국도시농업관리사 연합회의 이사장님을 뵀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이사장님은 평생 입어오신 양복이 편안하신 듯 하다. 도시농업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빛과 미소는 부드러웠지만 말씀에는 확신과 자부심이 배어난다. 2020년 5월, 창립한지 채 5년이 되지 않은 단체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도시농업 영역의 확장과 활동가들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의를 다해오신 사단법인 전국도시농업관리사연합회(이하 연합회)의 이정호 이사장님이다. 

 

왼쪽은 전국도시농업관리사연합회의 이정호 이사장님. 농장 입구에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게시되어 있다. 들어서기 전부터 이렇게 큰 환대라니. 이사장님과 단체의 따듯한 환대는 부산에 있는 내내 이어졌다.

 

부산시 기장군 철마로 538번지, 연합회의 실습 공간인 <연수농장>이 위치해 있다. 부산은 바다를 접한 대도시라는 점에서 인천과 지리적 입지가 비슷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차이점이라면 부산의 해변은 관광과 휴양의 장소, 이에 반해 인천의 해변은 매립과 산업단지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농장 입구에서 안쪽 하우스까지 길게 이어진 가운데 통로에는 검은 부직포를 덮어 관리가 쉽도록 했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 입구에 생소한 아연도금틀밭이 먼저 눈에 띈다. 직구로 구하셨다고 하는데, 나무틀밭에 비해 가볍고 녹이 슬지 않아 옥상텃밭에 놓기에 유리하다고 한다. 게다가 저렴한 것이 큰 장점이라는 이사장님의 설명이다.

 

이어서 좌우에 긴 이랑과 짧은 이랑의 노지밭이 줄지어 있고 가장 안쪽으로는 나무틀밭이 조성되어 있다. 농장의 첫번째 인상은 널찍한 개방감이었다. 틀밭 사이의 간격이 족히 1m는 되어 보이고 야자매트를 깔아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이곳 실습 텃밭에서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과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시설은 장애인의 이동이 쉽도록 규격에 맞게 조성되었는데 2025년에 치유농업 시설로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 

 

널찍하고 잘 관리된 인상의 부산 연수농장 전경

 

왼쪽) 아연도금틀밭, 저렴하고 썩거나 녹슬지 않아 유용하다고 한다. 오른쪽) 농장 곳곳에 건강한 땅을 만들기 위한 농사법을 소개하고 있다.

 

 

두 개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연수농장에서 올해 처음 실험적으로 진행됐는데, 둘 다 효과가 좋아 고무적이다. 상세한 설명을 요청드렸다.

 

 <도시민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농촌진흥청의 주관으로 전국 최초로 병원과 함께 효과성 검증을 위해 진행되었다. 경증 우울증을 가진 도시민들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각각 선별한다. 실험군은 프로그램 중에 ‘감정과 생각노트’를 쓰도록 설계되었는데, 노트에는 텃밭 활동 중의 인상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을 담고 그 이유를 적는다.

 

생각보다 대상자들이 이 활동을 힘들어 한단다. 그러나 어렵게 만들어가는 그 노트에는 기다리던 새싹을 마주한 순간과 같이 소소한 감동의 순간이 채워져 있다. 향후 치유농업을 이용한 ‘마음챙김 프로그램’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 돌봄 농사요령 프로그램>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약칭 농정원)의 공모 사업으로 실시했다. 부산의 발달장애인협회와 협력하여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3월에서 11월까지 한 해 농사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장애인은 사회 안에서 언제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 텃밭에서만큼은 그들은 시선과 활동의 억제로부터 자유로워했다고 한다. 텃밭은 비슷한 상황의 가족들이 어울려 개방된 공간에서,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우는 시간을 맘껏 누리는 안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을 함께한 한 발달장애인의 아버지가 이 경험을 도시농업 체험 수기에 담아 응모했다. 그동안 겪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프로그램 참여로 인해 되찾은 희망에 대해 담담히 쓴 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2024년에 시범적으로 실시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도시농업의 사회적 기능을 확인시켜주었다. 단체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확대하고자 계획중이다. 왼쪽)우울증 환자에게 활용된 '감정과생각노트' 오른쪽)발달장애인 환자의 아버지가 쓴 도시농업 체험수기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김선옥 선생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발달장애인 가족들과 어떻게 관계를 이어나갈지 고민하고 있다.

 

연합회의 회원 가입 조건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와 달리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이 기본 요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는 매년 배출되는 ‘도시농업관리사’의 기반 확보를 위한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도 지역에서 필요한 요구를 한 목소리고 내며 지속적으로 연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새로운 도시농업전문가 양성 기관의 탄생, 금정도시농부학교

 

금정도시농부학교는 2024년에 결성된 오륜도시농업공동체가 같은 해 7월에 설립한 신생 도시농부학교다. 김이곤 교장이 학교를 이끌고 있다. 

 

부산시 금정구 오륜대로 263-32, 회동저수지를 낀 부엉산 자락에 기존에 주말농장이었던 1000여평 땅을 실습장으로 조성하고 있다. 조성 계획에는 텃밭을 중심으로 치유 프로그램 실습장, 약용작물 재배지, 버섯 재배지, 드론 실습장, 철새 탐조대 등 도시농업과 숲체험 활동이 가능한 복합 공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계획에 맞게 도시농부학교의 주요 구성원도 치유농업사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도시농업 관련 자료들이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고 한다. 

부엉산 자락에 자리잡은 금정도시농부학교. 텃밭과 산림을 중심으로 복합적인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계획중이다.

 

직접 재배한 새싹삼을 선물로 주셨다. 우리가 가져간 '도시농업선언문' 이 의미있는 선물이 되었다. 학교 어딘가에 걸려있을 것이다.


2024년 기준으로 부산에 등록된 도시농업지원센터와 양성기관은 무려 50개 이상이다. 도시농업의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관련 공동체와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많은 것에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많은 도시농업 단체가 그렇듯 자립을 위한 고민도 치열하다. 

 

금정도시농부학교 또한 그들만의 비전과 고민을 안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민에게 활력을 주는 멋진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길 응원한다.




"텃밭은 작물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곳이예요." 

아파트 단지 텃밭 사례 1)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명지2차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약칭 명지2차금강)

 

짭짤이 토마토가 유명한 부산 대저 지역 인근, 명지2차금강은 온통 밭이었던 부지에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명지지구가 조성되면서 2016년에 준공된 676세대의 아파트다. 아파트 준공시 단지 내에 미리 계획된 텃밭 부지가 총 4곳으로, 모두 나무틀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 세대의 15%가 텃밭을 이용할 수 있을만큼 큰 규모다.

 

관리사무소가 텃밭의 운영에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공동체텃밭의 운영 방식과 유사하게 연회비를 받아서 퇴비와 모종을 공동으로 구입하고 나눈다. 바쁘신 와중에 동행하며 설명을 해주신 관리사무소장님은 “텃밭이 있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이 대화도 하고 밥도 먹는 기회도 만들어 진다. 지금처럼 물가가 높고 먹거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시기에 텃밭이 꼭 필요하다.” 며 운영 의지를 보였다.  

 

명지2차금강아파트 단지에는 이렇게 넓은 텃밭 공간이 네 곳이다.

 

아파트 관리소장님(왼쪽)과 탐방 중에 만난 주민(오른쪽) 텃밭이 없었으면 이웃간 대화도 시작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 텃밭 사례 2)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부산명지중흥S-클래스프라디움(약칭 중흥S-클래스)

 

관리소장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흥S-클래스아파트로 향했다.  앞에 소개한 명지2차금강아파트는 조성 당시부터 텃밭 부지가 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곳은 젊은 동대표의 의지로 단지 내에 도시텃밭 공간을 하나씩 만들고 있다. 그 주인공 김현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자 하면 공간이 보여요.” 

도시농업과 공모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가 동대표로서 아파트의 공동체 공간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아파트 경로당 옥상이었다. 의지는 바로 실행으로 이어졌다. 2020년에 조성한 경로당 옥상텃밭은 지난 4년 동안 단지내 어르신과 주민들이 농사도 짓고 행사도 하는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작물 관리는 주로  경로당 어르신들이 담당했다. 원래 이 지역 농부였던 어르신들의 지혜와 노동으로 주민 모두가 오가며 즐기는 장소가 된 것이다.

 

경로당 옥상텃밭. 지금은 방수공사를 앞두고 잠시 철거 예정이다. 아파트 주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옥상텃밭의 호응이 좋자 단지 내 조경 부지에 텃밭 공간을 만드는 것까지 착수하게 되었다. 어린이 모래 놀이터 주변으로 텃밭도 놀이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그림을 그리고 주민을 설득했다. 그녀 표현대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원래 있던 소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텃밭 공간이 다행히 주민의 호응이 좋아 지금은 인기 산책 코스가 되었다. 최근에는 구청의 지원을 받아 산책로 주변으로 장애인을 위한 높은 틀밭도 조성했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배치된 높은틀밭은 휠체어를 탄 주민이나 어르신들이 활동하기 용이하다.

 

아파트 텃밭은 무엇보다 '보기좋아야' 한단다. 조경수 사이에 새로 만든 틀밭이 '관짝' 같아서 국화를 심으려고 계획하고 있다.

 

단지 가운데, 일반 조경 공간이었던 곳을 농업기술센터의 '조경다층식재기술 시범사업'에 지원하여 멋진 커뮤니티가든으로 만들었다.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이 시범사업에 부산의 다른 아파트들은 모두 거절을 했단다. 공간도 문제지만 번거롭고 관리에 손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단지내 텃밭은 분양을 하지 않고 일부는 커뮤니티에서, 일부는 작물의 일부를 주민에게 나누는 소작농(?)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렇게 하니 민원이 적단다. 사실 공용 공간을 바꾸는 과정에서 주민 동의를 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호의적이지 않은 주민들에게는 더 살갑게 다가가 손수 기른 작물을 선물하며 꾸준히 설득한다. 텃밭은 작물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지와 실행력, 그리고 유쾌함이 공동체의 공간을, 사람을 바꾸고 있다. 

 

"텃밭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리만족이 막 느껴져요." 김현주 동대표는 참 멋진 사람이다.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 속에 공동체를 위한 선의의 에너지가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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