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를 공통의 언어로 — 식용도시 스터디 1회차 후기

우리는 왜 모였나?
7월 22일 수요일 저녁, 식용도시 스터디 첫 모임이 열렸습니다. 오프라인 자리에는 스무 명 남짓이 둘러앉았고, 화면 너머 온라인으로도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인천은 물론이고 서울, 금천, 청주, 영주까지 — "식용도시(Edible City)"라는 낯설지만 자꾸 마음에 남는 이 단어 하나에 이끌려 각자의 자리에서 접속한 셈입니다.
진행을 맡은 아메바(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이 스터디의 성격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습니다. "누가 발제를 하고 공부를 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책을 같이 읽고 그 내용에 공감하고, 우리가 실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번역한 자료를 교재 삼아, 매주 수요일 5주에 걸쳐 진행하고(8월 5일은 한 주 쉼) 8월 19일에 마무리하는 일정입니다. 마지막 회차에는 실천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첫 순서는 짧은 자기소개였습니다. 도시농업 전문과정을 마친 분, 은퇴 이후의 삶을 그리며 온 분, 마을 사업에 접목해보려다 벽에 부딪혀 다시 답을 찾으러 온 분, 어린이집·아파트에서 텃밭을 가꿔온 분까지 — 배경은 저마다 달랐지만 "식용도시라는 개념을 내 현장에서 어떻게 현실로 만들까"라는 물음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온라인으로 접속한 분들의 이야기도 풍성했습니다. 조경을 전공하며 바이오필릭 시티에 관심을 둔 분, 서울 마포에서 '파절이(파릇한 젊은이)' 커뮤니티로 도시 농사를 지어온 분, 청주에서 신생 도시농업 네트워크를 꾸리며 올해 식용 텃밭 세 곳을 시도하다 한 곳이 철거되는 어려움을 겪은 분 — 각자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고민들이 첫 자리를 단단하게 채웠습니다.
식용도시, 그리고 토드모던
'식용도시'는 영국에서 시작된 '인크레더블 에디블(Incredible Edible)' 운동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처음엔 낯설던 이 말도, 도시농업이라는 표현이 그러했듯 부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무대는 영국 북부의 작은 도시 토드모던(Todmorden). 인구 1만 5천 명 남짓, 한때 방직공장 지대로 토양이 오염되었던 이 마을에서, 주민들은 버려진 공간마다 채소와 허브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기차역, 경찰서 앞, 주차장의 상자텃밭까지 — 도시 곳곳이 '누구나 따 먹을 수 있는 밭'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원봉사자 300여 명이 요리 교육, 기술 교환, 도시 재배로 활동을 넓혔고, 공적 기금에만 기대지 않고 강의·기부·자체 사업으로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냈습니다.
이날은 2019년 서울 도시농업 국제 컨퍼런스 당시 토드모던 홍보대사가 공유했던 자료와, 영화 〈내일(Demain)〉에 담긴 창립자 팸과 메리의 영상을 함께 보며 분위기를 데웠습니다. 영상 속 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구를 구하자는 거창한 구호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을 뿐이에요."
책 속으로 — 1장부터 4장까지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번 분량(1~4장)의 흐름과 메시지를 짚어봅니다. 참고로 책의 각주는 모두 번역자의 주석으로, 영국의 상황이나 낯선 단어가 왜 그렇게 번역되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각주를 함께 읽으면 맥락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1장 · 행동으로의 부름(Call to Action)
운동의 출발점은 팸이 2007년에 들은 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자는 '푸드 마일리지'로 유명한 팀 랭 교수. 조경가들을 위한 자리였는데, 그는 "잔디 같은 것 심지 말고 먹거리를 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92년 리우 회의가 있은 지 20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말만 무성할 뿐이라고요. 강연 내내,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말을 곱씹던 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활동가 메리를 찾아갑니다. 메리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동체 활동을 해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 지역을 바꾸려면 이런 활동가가 함께 나서줘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커피 한 주전자를 다 비울 만큼 긴 대화 끝에 메리는 "일단 5년은 해보겠다"고 답하며, 대신 한 가지를 조건으로 겁니다. "친절을 강조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 이렇게 세워진 초창기 세 가지 원칙이 18~20페이지에 소개됩니다. 첫째,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둘째,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다(정부가 안 해줘서 못 한다는 피해의식을 버리자). 셋째,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 그리고 운동을 떠받치는 핵심 세 요소 — 배움, 공동체, 비즈니스가 처음 등장합니다.
2장 · 먹거리의 힘 (메리 클리어의 이야기)
짧지만 뭉클한 장입니다. 핵심 활동가 메리 클리어의 목소리로, 먹거리가 지닌 힘을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 몹시 가난해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그는, 수녀님들이 먹고 남은 베이컨 껍질을 모았다가 튀겨서 주던 기억을 또렷이 떠올립니다. 그 경험이 먹거리의 소중함으로 이어집니다. 29페이지, "장미로는 잼을 만들 수 없잖아"라는 남편 프레드와의 대화가 결정적입니다. 결국 메리는 집 앞의 돌담을 걷어내고, 정원에 있던 장미밭도 걷어낸 뒤 그 자리에 채소를 심습니다. "누구나 따 가세요"라는, 이 운동을 상징하는 첫 텃밭이 바로 메리의 집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장식용 꽃 대신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어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게 한 이 방식이, 공동체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3장 · 2008년, 확산의 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텃밭이 하나둘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3장의 제목은 "한 번에 루바브 한 줄기씩". 여기서 등장하는 루바브는 이후에도 계속 나오는, 이 지역의 '국민 채소' 같은 작물입니다. 분기점은 토드모던 고등학교 급식 책임자 토니 월루가 지역 신문에 낸 한 줄이었습니다. "채소를 키우고 싶은데 도와줄 사람 있나요?"(40페이지) 이 글을 보고 팸과 메리가 곧장 찾아가면서 학교 텃밭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보자"며 주민회의를 소집하자 놀랍게도 60명이 모여듭니다. 이후 텃밭은 기차역, 학교 텃밭, 문화회관으로 차례차례 번져갑니다. 이 장에는 에스텔 브라운도 등장하는데, 그는 홈페이지 관리와 언론 대응 등 홍보를 도맡아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경찰서 화단에서 경찰을 만나 대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3장의 끝은 수확 축제입니다. 유명한 요리사까지 등장한 이 축제에 400명이 모였고, "함께 밭을 일구는 것을 넘어 다 같이 즐기는 축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 그렇게 모이니 유대감이 생긴다는 경험이 여기서 나옵니다.
4장 · 시스템의 유연한 운영
대표를 세우고 조직을 촘촘히 뿌리내리는 대신, 유연함을 택한 이야기입니다. 보건센터 편입 같은 여러 사례가 소개됩니다. 64~65페이지에서는 공유지에 심는 문제가 다뤄집니다. 좋은 넓은 터에는 그냥 심기가 어려워 찾아가 "여기서 활동할 수 있는 허가증을 달라"고 요청하고, 승인을 받아 활동을 시작하지만 결국 그 제도는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행정 부서와 마찰을 겪으면서 "차라리 체계를 짜서 할까" 고민도 하지만, 그들은 촘촘한 체계보다 느슨하게 여는 쪽이 낫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호가 4장 끝, 71페이지에 나옵니다. "먹으면 참여자." 닉이 제안한 이 구호는 인크레더블 에디블·토드모던이 지향한 정신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 운동의 대표적 방법론인 게릴라 가드닝(선전식재)도 새겨둘 만합니다. 허락을 구하기보다 먼저 실행한 뒤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경찰서 화단 같은 공간에 담당자의 묵인 아래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채소와 허브를 심었습니다. 오염된 토양 탓에 상자텃밭(raised bed)을 쓰고, 버려진 공간을 아름답게 되살리며,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이게 하는 개방성이 이 장을 관통합니다.
토드모던을 만든 사람들 — 인물 소개
식용도시 운동이 시작된 영국 토드모던. 이번 회차에 등장하는 네 사람을 짧게 소개합니다.
팸 워허스트 (Pam Warhurst) 공동 창립자이자 대변인.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30년간 칼더데일 의회를 이끈 정치인이었다. 2007년 팀 랭 교수의 "꽃 대신 채소를 키우라"는 강연에 마음이 움직여, 그날 저녁 메리를 찾아가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말이 아닌 행동' 등 세 원칙과 공동체·배움·비즈니스의 비전을 세웠고, 2012년 TED 강연으로 이 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메리 클리어 (Mary Clear)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체 운영위원장. "세상에서 인맥이 가장 넓은 사람"으로 불린 전직 사회복지사다. 극심한 가난 속에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며 음식의 힘을 몸으로 배웠다. 자기 집 앞 돌담을 허물고 장미 대신 채소를 심어 "마음껏 가져가세요"라 써 붙인 것이 운동의 출발점. 게릴라 가드닝 대신 '선전 식재'를, 무엇보다 '친절'을 운동의 핵심 가치로 세운 사람이다.
에스텔 브라운 (Estelle Brown) 첫해의 세 번째 핵심 인물, 홍보·미디어 담당. 전직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운하 위 보트에 살며 늘 선명한 색 옷을 입는 멋쟁이다. 웹사이트와 지역신문 연재, 전 세계 언론 응대와 방문객 안내를 도맡았다. 철저한 비건이면서도 시장 정육점 홍보에 앞장섰고, 소심했던 자신이 "강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닉 그린 (Nick Green) 공동 창립자이자 '놀라운 재배자'. 금속공·조각가이면서 생화학 박사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옛 동료 메리가 재배 책임자로 발탁했다. 파란 멜빵바지에 헝클어진 수염이 도시의 상징이 됐다. "걸림돌은 곧 행동하라는 초대장"이라며 온갖 기발한 장치를 발명했고, 운동이 시작된 뒤 생긴 재배지 135곳의 대부분을 직접 기획하고 만들었다. 좌우명은 "크게 생각하라".

참여자들의 목소리 — 이 공부가 갖는 의미
책 이야기가 참여자 각자의 현장으로 옮겨오면서, 스터디의 진짜 힘이 드러났습니다.
한 참여자는 과학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떠올렸습니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하며, 낯선 이를 환영하는 다정함이 결국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이야기. "친절과 다정함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고 식용도시를 이루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구나 다시 느꼈다"
현실의 어려움도 솔직하게 오갔습니다. 아파트 공동체 텃밭을 꾸려온 이는 "키우는 사람은 결국 나 혼자인데, 가져가는 분들은 많다. 이걸 어떻게 함께 모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마을 텃밭을 운영해온 다른 이는 수확물의 사유화, 겨울철 상자를 몰래 가져가는 일들을 겪으며 "선전식재란 결국 내가 먼저 내려놓고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농약, 공간 부족, 위생법상 납품의 벽 같은 실질적 난관도 빠짐없이 짚였습니다.
'메리 찾기'는 이날의 또렷한 화두였습니다. "우리 공동체 텃밭에는 매일같이 나와서 사람들을 잇고 멀리 전파해줄 누군가가 없었다"는 반성, 그러니 "남동구에서 내가 아는 인맥부터 찾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는 다짐이 나왔습니다. 섬에서 17년째 살아온 참여자는 '장소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달라진다고, 그 언어를 알아듣기까지 4년이 걸렸다고요.
토드모던의 성과가 실제인지 확인해봤다는 참여자는 그 지역의 범죄율이 낮아지고 살기 좋은 도시로 꼽혔으며 인구도 다시 늘었다는 데이터를 전하며, "인구 40만 규모 연수구에도 충분히 적용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보탰습니다.
"문제가 너무 거대해서 사람들은 그냥 귀를 닫아버린다"는 책의 한 구절 앞에서, 한 참여자는 "그래도 나라도 하자, 그런 사람이 몇 명 모이면 20명, 100명 되지 않을까"로 마음이 바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서리를 자주 당하던 텃밭에 "몰래 말고 당당하게 가져가시라"며 이름표와 사용설명서를 붙여둔 실험, 공유냉장고에서 처음엔 가져가기만 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자기 우유를 다시 채워 넣더라는 이야기까지 — 저마다의 작은 실천이 공유되었습니다.
한 참여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먹거리라는 공통의 언어'로 꿰었습니다. "도시농업을 이야기하면 자꾸 땅 소유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먹거리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고, 마을이 어떻게 변하는가다. 먹거리는 혁명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매개일 뿐"이라고요. 요리를 모르면 못 먹고 버려지는 작물, 그래서 식생활 교육으로 이어지는 실천, 동네 카페를 거점으로 삼으려는 시도까지 — 그의 텃밭 경험은 책의 메시지가 이미 우리 곁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무리 — "내 주변에 메리가 없으면, 내가 메리가 되면 된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긴 모임의 끝, 소감들이 오갔습니다.
"먹으면 참여자라는 구호가 참 신선했다", "감자를 나눠 먹은 뒤로 엘리베이터에서 인사가 늘었다", "찾아오시는 분께 따 가시라 해놓고 정작 내 마음이 친절하지 못했구나 싶어, 앞으로 더 친절해지겠다"는 다짐들. 2013년부터 아파트 텃밭을 꾸려온 아메바는 "그저 사람을 모으는 계기로만 생각했지, 이걸 먹거리 혁명과 연결해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내 주변에 메리가 없으면 내가 메리가 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친절을 남에게만 베푸는 게 아니라, 그러기 위한 노동과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왔는데 와서 보니 범위가 너무 넓었다"는 분, "성당이라는 거점이 있으니 뭔가 해보겠다"는 분, "도서관을 거점 삼아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보겠다"는 분까지 —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 다른 지점에 마음이 닿았습니다. 그 다름이야말로 이 스터디가 앞으로 채워갈 풍성함일 것입니다.
다음 모임부터는 온라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주까지 8장까지 읽어오는 것을 목표로, 읽지 못했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넉넉한 초대와 함께 1회차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나부터'라는 것. 식용도시 스터디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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