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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의 서가

[서평] 이 세상이 선물이라면 - 『향모를 땋으며』

by 토달볶음 2025. 11. 30.

 

『향모를 땋으며』의 저자인 로빈 윌 키머러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선물이 내 앞의 세상에 한가득 펼쳐져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가진 것에 따라 흙수저금수저로 출신성분을 가르고, 청년들이 헬조선을 탈출할 날을 바라는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로빈 윌 키머러 (출처 : 에이도스 출판사)

인디언 여자 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키머러가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는 추측을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는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가 식물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 과정에 지원했을 때, 지도교수로부터 받은 추천서에 “인디언 여자 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칼라일 인디언 학교 (출처 : 에이도스 출판사 )

 

  미국 정부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땅과 언어를 빼앗고,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지워버리려고 했다. 키머러의 할아버지기숙학교로 보내진 아이였고, 미국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오클라호마 인디언 보호구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포타와토미족의 강제이주 여정. 1060킬로미터였고 여정이 끝난 후 백여명이 넘는 부족민이 사망해서 '죽음의 길'이라고 불린다

 

나를 키운 것은 딸기

 

  키머러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포타와토미 공동체 안에서 자랐고, “나를 키운 것은 딸기라고 말할 정도로 자연의 선물을 흠씬 누리며 살았다. 그에게 자연은 필요한 모든 것을 요청하기도 전에 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돈이 많은 삶보다 자연과 가까운 삶이 더 충만하고 행복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감사 연설을 들으면 부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세상이 이미 준 것 외에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논다가 부족은 한 주를 시작하고 끝낼 때 모든 사람이 함께 기나긴 감사 연설을 암송한다. 대지와 물을 비롯한 생태계 각 요소가 그 역할과 함께 호명된다. 물고기, 초목, 텃밭 작물, 동물 등 고마움을 표현할 대상의 명단이 너무 길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감사는 충만함과 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키머러는 감사 연설을 들으면 부자가 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동식물과 물, 불, 천둥, 공기 등 모든 자연의 일원을 사람처럼 대한다

 

  감사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아메리카 토박이말은 식물과 동물을 ‘저것’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 , 천둥, 공기 등 무생물이라고 해도 자연의 일원이라면 마찬가지로 존칭을 했다. 향모를 땋으며에서 작가는 동식물명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했다. 영어 문법에서 사람 이름의 첫 글자에 대문자를 쓰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한국어 번역에서도 이름 뒤에 을 붙여서 동식물을 사람처럼 명시하고 있다.

 

텃밭에 함께 심는 세자매(옥수수, 콩, 호박) 

 

  감사로 보답하며 세상의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은 아메리카 토박이 지혜에서 비롯되었지만, 식물학자인 작가는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텃밭에 함께 심는 작물로 세 자매라고 불리는 옥수수, , 호박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텃밭의 풍경을 상상해보자. 키 큰 옥수수의 줄기를 타고 콩 덩굴이 자라고 호박이 가장 아래에서 자유롭게 공간을 채운다.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는 일 없이 골고루 햇볕과 물을 받을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적은 면적을 차지하는 옥수수는 콩을 지탱하고 콩은 남아도는 질소를 토양에 공급해 땅을 비옥하게 한다. 호박은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땅을 넓은 잎으로 덮는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도 다양하다. 옥수수는 탄수화물, 콩은 단백질, 호박은 비타민을 담당한다. 완벽한 하모니다.

 

텃밭에는 네자매가 필요하다

 

  텃밭에서 세 자매의 모습을 보면 자연 그 자체로 완벽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저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텃밭의 세 자매는 인간이 씨를 뿌렸고 잡초를 제거했기 때문에  자랄 수 있었고,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텃밭에는 세 자매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네 자매가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향모는 향기가 나는 성스러운 풀이다

 

  네 자매가 각자 맡을 역할을 하는 텃밭의 모습을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살아가고,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통해 번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기계 문명의 발달에 따라 자연과 멀어지고 어느새 자연을 망가뜨리는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다. 키머러가 교사로서 식물학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인간이 자연에 행한 우호적인 모습을 찾아보라는 질문을 하자 학생들은 좀처럼 대답을 찾지 못했다.

 

  향모’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제의에 사용되는 풀로, “윙가슈크라는 아름다운 토착어로 불린다. 갓 감은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부드럽고 향기가 나며, 아름다운 바구니를 만드는데 쓰이고 약초로도 사용된다. 현재 다른 많은 식물들이 그렇듯이 이 향모도 서식지가 줄어들고 생존에 위험을 받고 있다.

 

향모의 학명은 Hierochloe odorata(히에로클로에 오도라타)의 뜻으로 ‘향기가 나는 성스러운 풀’ 이다 (출처 : 에이도스 출판사)

 

인간의 손길이 식물의 생장에 이로운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증명

 

  키머러는 식물학자로서 향모의 수확 방법에 따라 향모의 성장이 달라지는 모습을 연구했다. 향모를 뿌리째 뽑는 것과 뿌리를 두고 줄기를 뜯는 방법으로 차이를 주고, 아예 수확을 하지 않은 들판을 대조군으로 삼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뿌리를 뽑든 줄기 가운데를 뜯든 큰 차이가 없이 향모는 잘 자랐다. 오히려 피해를 입은 곳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들판이었다. 향모를 수확함으로써 남아 있는 향모가 햇빛, 바람, 물을 넉넉하게 가질 수 있었지만, 수확이 없는 들판은 자원 경쟁이 심해져서 오히려 향모들이 잘 자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른바 솎아내기라는 인간의 손길이 식물의 생장에 이로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다.

 

담비 사냥꾼은 이웃을 챙기듯이 담비를 돌본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반드시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라이어널이라는 담비 사냥꾼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동물이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에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영양가가 많은 내장을 구해 담비가 다니는 길가에 놓아둔다. 키머러는 그의 모습에서 고립된 이웃을 위해 따뜻한 캐서롤을 가져다주는 장면을 떠올린다. 물론, 라이어널 덕분에 담비의 수는 늘어날 것이지만 담비가 그에게 목숨을 잃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다.

 

받드는 거둠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착 계율로 받드는 거둠이란 말이 있다. 생명을 필요 이상으로 취해서는 안 되며, 가져간 것에 대해 감사와 보답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키머러는 이를 우리의 취함을 주관하고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를 빚고 우리의 소비 욕구에 고삐를 죄는 규칙이라고 말한다. 이 규칙이 지켜져야만 미래 세대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을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땋은 향모를 손에 쥔 아메리카 원주민 (출처 : 에이도스 출판사)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세상

 

  세상은 서로 도움을 주는 호혜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누리는 모든 것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초대받은 잔치에서 공짜 선물에 혹해서 꼭 필요하지도 않을 선물상자를 무턱대고 쌓아놓고 그걸 지키기 위해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누가 훔쳐갈까 봐 눈을 부라리지 말고 춤판에도 끼어들고 이웃과도 즐겁게 눈을 맞추자. 그리고 내가 받은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서 다시 세상 속에 풀어놓자. 이렇게 선물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우리에게로 끝없이 순환한다. 이것이 "선물이 한가득 발치에 뿌려져 있는 세상"의 비밀이다.

 

 

* 에이도스 출판사의 『향모를 땋으며』에 대한 자세한 안내글이 필요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에이도스 출판사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https://blog.naver.com/eidospub/22177383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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