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농부의 서가

[서평] 기후 협치 – 지구 거주자들의 공생과 연대 |신승철·이승준 지음

by 조이 :-) 2025. 12. 3.

기후 협치

지구 거주자들의생과 연대

 

신승철, 이승준 (지은이) ㅣ 알렙   2025-08-25

 

 

 

ㅣ서평 김보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이사, 도림공동체텃밭 회원

 

 

제목을 보아서는 기후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는 책인가 싶지만, 이 책은 협치에 대한 반성과 조건 그리고 바람직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 협치가 또 다른 말로 거버넌스로 불리고 시도되었던 과정을 돌아보면서 거버넌스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가져보는 것으로 책을 읽으면 좋겠다.

또한 이 책은 기후 위기 속 지구 거주자들에게 협치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가 무분별한 성장과 발전 그리고 소수에게 집중된 이익 창출에 있음을 성찰하고 바람직한 협치가 가지는 중요한 시사점을 이 책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협치란 함께-성장이며 더불어-발전이고 공공-이익 창출이라는 복합적인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목적을 위한 행위라는 점.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협치의 이야기를 1장부터 3장까지 간단히 소개하면서 함께 우리의 기후 협치, 협치적 협치[각주:1]를 상상해보면 좋겠다.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기후 위기와 탈성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기후의 문제는 무엇이며,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지금의 위기 정도는 어떠한가가 1장 첫머리에 적혀있다. 잘 알고 있다시피 수치로 보는 기후 문제는 이미 임계점은 넘어가고 있음을 여러 장면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덴마크 그린란드 지질연구소’가 2021년에 발표했듯이, 그린란드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진입했다. (p. 29)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이 불러온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의 훼손, 토지와 담수 오염의 심각성은 차별적이고 악의적으로 인류와 지구 거주자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저자가 찾은 원인은 성장[각주:2]인 것이고 통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탈성장을 이해하고 협치를 상상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한 번 더 다음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탈성장은 성장을 바람직한 사회와 삶의 태도로 연결하는 고리를 끊으면서 성장과는 다른 삶이 있음을 연상시킬 수 있다.(p.43)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미래를 향해 있는 노스텔지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와 역사가 지역에서 세대를 통해 전수되는 공동체가 얼마나 평화로운지 알아가는 게 이제는 임계점을 넘어선 것일까. 저자는 지구 거주자들(물질 전반)의 직접 민주주의를 소개하고 지구공간과 지구물질을 공통의 협치가 가능한 커먼즈[각주:3]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이것이 구성적 협치의 요소 커먼즈 & 직접민주주의이다.

 

 

2장 협치의 기본구도

지난 2019년 갑작스레 들이닥친 팬데믹으로 인류는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갖게 되었다. 지구 전체에 불을 끈 것이다. 모두가 동시에 끈 불은 소수가 결정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행위이며 희생이 치러진 이러한 교훈을 쉽게 잊지 말아야겠다. 이 책의 2장 역시 상실을 전환한 새로운 정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불가항력적 재앙의 희생된 집단과 그 집단을 위로하는 낯선 타인들(사회-집단)에서 협치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앓이와 함께 앎이 형성된 것이다. 어떤 앎으로 정리해 보면 좋을까

 

<생태 개념어 쪽지>

다중의 민주주의
안토니오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절대민주주의’관을 오늘날의 탈근대적인 반자본주의 운동과 결합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민주주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스피노자가 제기한 문제는 근대의 핵심에 민주주의 사상의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다중에 의한 통치라는 가설이 존재하는지, 공통적인 것의 제도화가 가능한지의 여부이다. 그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주관적 초월성의 주장과 모순되면서 내재성으로 귀결되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혹은 윤리적인 것(특히 윤리-정치적인 것)을 신체들 안에, 욕망의 물질성 안에, 그리고 신체들의 미주침과 충동의 흐름 안에 기초짓은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 혹은 그것의 필연성의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를 고독에서 해방시키고 세계를 함께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이 이러한 발전의 근거로 부과될 수 있는 방식의 문제이다.”

 

 

주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절대성에서, 주체는 주체성으로 또 주체성에 내재한 유연성과 상대성을 협치와 환원하는 방식으로 절대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가능성을 찾아보면 어떨까. 또한 제도 내 욕망의 충돌과 혼돈은 앓의 과정이며 필요 조건의 항목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사랑의 덕목을 넣어 앎으로 승화하는 정동을 형성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계속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새로 글을 적고 있지만,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지도가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체의 협치 안에서 저자가 고려한 것은 의 원리이다. 제도로 편입된 권력 구조 내 힘의 균형을 가지는 것 특히, 기후위기의 전지구적인 행위가 공동으로 협치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실제를 대변하는 권력과 힘이 모이고 결정의 힘을 가지는 가능성을 협치의 구도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 장에서 한 번 더 권력과 힘의 균형을 위한 주체성과 집단화의 철학을 확인시켜 준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3장에서는 브뤼노 라투르, 펠릭스 가타리, 네그리·하트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의 말들이 인용되고 설명되어 있다.

 

사상가들의 사유를 빌어 내 생각의 호수를 만드는 일은 난해하면서도 자유로우면서도 배 속이 간질거리는 일이다. ‘배 속이 간질거린다는 표현이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일 앞에서 긴장과 설렘이 있을 때 쓰는 표현인데, 이 대목에서 내가 차용하기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항을 대입하고 풀어보는 방정식으로 글을 적어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충이나마 이해를 적어보면,

 

저자가 소개한 브르노 라투르의 말에서 나는 인간 행위와 사물이 한 단지에서 끓고 있는 '돌멩이죽'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구마축제에서 먹어 본 돌멩이죽에는 텃밭에서 나온 각종 작물의 흐느러짐이 있다. 맛은 베어나오고 베어들어면서 경계지어진 맛의 탈출의 향연과 결정체를 만들어 가는데 그것이 결국 또 누군가의 입을 통해 몸으로 흡수되고 맛의 정의가 이루어지며 이야기 나눔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만들어지는 과정도 음식을 나누는 행위도 모두 변신을 경험하는 것이며 여기서 동일한 음식의 신체 투과는 수평의 진화를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펠릭스 가타리를 소개하는 편을 읽는 지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 2악장[각주:4] 의 선율이 문득 떠올라 뇌 속 선율로 지나간다. 검색을 하고 음악을 틀어본다.

 

가타리는 제도는 고정된 틀이 아닌 관계망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환자 치료에 제도요법을 활용했다. 개인은 제도=관계망 속에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관계망은 무의식의 단계로 승화되어야 하며 전문가들이 만든 제도와 구별된다.

 

의식의 무의식화 과정은 ‘제도 → 관계망’으로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협치가 작동하는 현실은 ‘의식의 무의식화와 무의식의 의식화의 교섭’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즉 제도와 관계망이 따로 상향, 하향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향하여 삶이 욕망 안으로 스며들게 하며, 무의식의 의식화를 수행했던 전문가들의 작업이 협치의 현실 속에서 반영되는 방식으로 함께 의식적 차원과 무의식적 차원을 교직하게 하는 것이다.(p. 155)

 

 

관계망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사이주체성이다. 주체성을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이주체성은 더욱 생소한 말이다. 각자의 상황과 이해에 맞게 이해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의 이해는 관계의 영향권이라는 거리를 염두하고 그 사이의 오고가는 시간과 공간, 차이와 공감을 포함한 주체성으로 사이주체성을 이해하고 싶다.

 

이제 네그리와 하트로 넘어가보자. 우리에게 협치란 아픈 손가락일 수도 있다. 특히 2000년 초반부터 진보정치가 개방적 성격을 가지고 가시화 되면서 국회와 각 행정기관에서는 시민단체와의 협치를 구조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내에는 이제 협치의 경험이 누적되었다. 그런데 의도한 만큼의 권력을, 변화를 만들어가는데 때론 동료에게, 때론 권력에 상처입기도 했던 시간임은 알게 되었다. [각주:5] 

 

네그리·하트 역시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권력의 해체와 다중의 활력을 강조한다. 다중의 다층적 구조에서 다양성을 추앙하는 것은 책에서 소개한 가난한 코뮨의 표상을 실현하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제 상처입은(?) 우리는 상상의 SF를 찍어보자.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가 마지막 소개한 인물이다.

 

도나 해러웨이가 강조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흥미있었지만 더욱이 공상적 이야기를 협치에 이용한다는 것은 신선한 조합이다. 한번쯤 서평으로 소개하고 싶은 분야이기도 한 진화심리학 내에서는 뇌신경학과 동물학 등이 간학문적으로 교류되고 있는 거 같다. 도나 해러워이의 동물적 감각과 공-산의 의미는 히피스러우면서 원시적인 내음이 난다.

 

• 생태 개념어 쪽지

공-산
‘공-산(共産/sympoiesis)’은 ‘함께(sym)+제작하다(poiesis)’라는 의미를 가진 해러워이의 용어로, 생명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인 개체주의와는 달리 생명들이 서로 협동하는 공생적 관점을 반영한다. 이 개념이 오늘날 의미 있는 것은 ‘사적 소유’를 지향하는 자본주의나 ‘공적 소유’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와 달리, 함께 제작하는 만큼 누구도 수유할 수 없지만 또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의 생산 행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3장까지 이렇게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사실 이 책은 5장까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서평의 내용으로 소개를 하지 않으려 한다. 재미난 사례가 소개되어 있으니 챙겨보면 좋을 듯 하다.

 

책을 읽으며, 지구는 원래 협치의 지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구 이전에 협치가 먼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탄생도 어떤 힘 혹은 어떤 물질 간의 협치였으며 우리는 다시 협치를 기억하고 협치를 상상하고 협치를 맛보려 하는 것은 아닐까.

 

공생의 조건은 공생이라고 했다. 기후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다양한 종 간의 공생과 유한한 듯 무한한 공존은 협치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일은 낭만적인 일이다. 그러나 조금더 바라봐주고 품까지 내어보면 어떨까. 협치의 결사체, 이것이 무엇이 되었든 도시농부들과 함께 행복의 협치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누군가의 심장이 담긴 이 책도 도시농부의 책장에 담아주길.. 고맙고 서늘한 초겨울날이다.

 

 

 

  1. 협치는 개개인의 역량이나 조직 간의 신뢰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거리가 있는 듯하다. 우리가 협치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해,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하는 점은 토대 혹은 바탕이라는 결론을 갖게 된다. 도시가 숲과 함께 있어야 하는 토대, 사람 속 미생물의 존재와 박테리아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태도, 가난과 불편함을 기꺼이 여기는 공동체라는 울타리의 토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토대 없는 협치는 수단적 협치 혹은 협치 흉내내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죽도밥도 아닌 통치를 위한 협치말이다. 결론없이 흐르는 과정으로의 협치,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 모두가 협치적 협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주로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과 물질의 소유화가 낳은 비극, 희소성과 상품성을 제일 가치로 삼고 인류애를 오염시키는 악의적 행위들이 결국 지구거주자들의 행복을 단보잡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성장주의자들은 화성 혹은 테라포밍으로 우리의 지구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본문으로]
  3.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을 소유의 관점이 아닌 공유와 공유관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나온 명명이다. 주체성과 공통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동체의식의 사상으로 이해해보면 좋겠다. [본문으로]
  4. 음악을 듣는 짬이 많지는 않지만, 운전을 하면서 고정된 클래식방송을 통해 고전음악을 듣고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하고 베토벤의 황제 2악장은 너무나도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피아노 선율로 라흐마니노프의 곡인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계속 여담이지만 라흐마니노프는 한 때 좋아했던 영화 속 음악을 통해 듣게 되어 더욱 애착이 들었던 거 같다. [본문으로]
  5. 이 책은 전환위원회에서 함께 읽었다. 내가 모르던 협치의 실체를 듣고 알게 된 이야기들은 현실에서 협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움은 알게 했다.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