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28년 만에 투표율이 가장 높은 대선이 치러졌습니다. 저의 관심도 온통 대선에 쏠려 있었습니다. 또 임시공휴일이라 쉴 생각에 여념이 없었죠.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내가 황금같은 임시공휴일에 도대체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의문과 호미 한 자루와 함께요.
그로부터 한 달 전, 도시농부들이 도심 한 가운데 방치된 땅에 1차 게릴라 가드닝을 벌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게릴라 가드닝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내 삶이나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와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게릴라 가드닝에 대해 처음 들으셨나요?
▶ 1차 게릴라 가드닝 활동이 궁금하다면?
그런데도 2차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한 이유는 기자단으로서 취재 기사를 쓸 필요성을 느꼈고, 예정된 일정 중에 유일하게 취재가 가능한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눈을 떠 호미를 챙길 때에도, 조용한 새벽에 다른 게릴라 농부들을 기다릴 때에도, 주인이 있는 방치된 땅에 침입(?)할 때에도, 어쩌면 모든 작당이 끝날 때까지도 제 머릿속에는 ‘나는, 그리고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황금같은 휴일 아침에, 내 땅도 아니고 남의 땅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해바라기를 심고, 꽃밭을 가꾸는 행위를, 제 자신도 납득이 안가니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제 짝꿍은 아직도 그 날 제가 뭐하러 새벽같이 나온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그 날의 진상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 이후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한 경험을 곱씹고 글로 풀어내면서, 그 날 나와 농부들이 한 일의 의미를 조금은 찾은 것도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그 날의 장면을 돌아보며 게릴라 가드닝이 단순히 ‘몰래 해바라기 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찾아보실래요?
#1 쓰레기를 주워 모으다.
농부들은 크게 둘로 나뉘어 활동했습니다. 한 그룹은 풀숲을 헤집으며 쓰레기를 주워 모았고, 한 그룹은 해바라기를 옮겨 심고 화단을 가꾸었습니다. 호미는 몇 자루 없는데 포대는 수십 자루 있길래 저는 쓰레기를 줍기로 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 땅은 풀만 가득한, 말 그대로 ‘풀숲’처럼 보였습니다. 별로 주울 게 없어보여 금방 끝나려나 싶었는데, 덩굴이 덮거나 키 큰 풀들이 가린 쓰레기들이 스무 포대가 넘게 나왔습니다.

물론 대놓고 쌓여 있던 쓰레기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담장과 가까운 땅일수록 심각했습니다. 자신의 발치에 쓰레기를 버리기 싫어서 펜스 너머로 투척했을 사람들이 그려졌습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과 이 땅을 가르는 건 두꺼운 장막이 아니라 철사 몇 가닥으로 엮은 울타리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걸로 인해 이 땅을 쓰레기를 버려도 괜찮은 땅으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그 쯤 되니 울타리 곳곳에 선명하게 내걸린 쓰레기 무단투기금지 팻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주인의 생각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쓰레기를 주워 모았습니다. 반지나 동전처럼 작고 발견하기 힘든 물건부터 목발이나 빗자루처럼 눈에 띄는 물건도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각종 비닐과 일회용 컵, 스티로폼입니다. 흔한 쓰레기이지만 이제 저에게는 그 이상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 땅에 버려진 채로 비바람과 햇볕을 맞은 플라스틱들은 제가 손을 댈 때마다 쪼개지고 부서졌습니다. 안타까워하며 더 이상 흩어지지 않게 부여잡았지만 흙 알갱이 사이사이에 떨어지는 조각들을 전부 주워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쓰레기를 주워도 땅은 오염된 채로 남는다는 사실이 이상한 여운을 남기더군요.
게릴라 가드닝이 끝나고 모인 쓰레기 포대를 보며 이만큼 땅이 깨끗해졌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잘게 쪼개진 쓰레기가 주워 담을 수 없는 오염이 되어버리는 장면이 떠올라 찝찝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빈 땅에 생명을 채우는 일이겠죠?
#2 사람들을 불러 모으다.
그 날 사람들은 거기에 왜 모였을까요? 게릴라 가드닝을 하기 위해서? 게릴라 가드닝을 왜 하는 걸까요?
게릴라 농부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왔는데 친구는 안 오고 저만 왔네요.”
“재밌을 것 같아서요.”
“1차 때 왔는데 뿌듯하고 좋아서 또 왔어요.”
답변을 들은 뒤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내 땅도 아니고 남의 땅 쓰레기를 줍고 그 땅에 해바라기를 심으러 13명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날 거기에는 13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뭐하나 싶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살피던 사람, 해바라기를 알아보고 나눠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던 사람, 거기서 뭐하는지 어디에서 나왔는지 묻던 사람,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같이 쓰레기를 줍던 사람, 그 땅을 볼 때마다 아까웠다며 저쪽에 핀 씀바귀를 뜯어먹으라고 말해주던 사람….
“2차 게릴라 가드닝에 오세요.”라고 직접 사람들을 부르지 않아도, 우리가 그 날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 둘 사람들을 부른 것이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 식물을 아끼는 마음, 고생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 방치된 땅이 아까운 마음 등 저마다의 이유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니, 이 일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깨끗해진 땅을 보고 기분좋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 땅이라도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지만 남의 땅에 함께하는 게릴라 농부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게릴라 가드닝의 의미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마무리를 위해 입구 쪽으로 나오자 아까보다 훨씬 정돈된 꽃밭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사실 어디가 꽃이고 풀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는데 정리가 되니 꽃이 활짝 필 날이 기대되더라고요.


이번에는 시선을 멀리 두고 열심히 쓰레기를 치운 땅 전체를 바라보았습니다. 깨끗해진 티가 나니 아까와는 다른 땅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처음에도 쓰레기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은 똑같은 풀숲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아예 다른 땅임에는 틀림 없었습니다.
게릴라 작당이 끝나자 땅은 더 깨끗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많은 생명을 품을 준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물론 아직 치울 쓰레기들이 남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3차에 함께할 분들이 계신 거 다 압니다.)
두 차례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가꾸었을 뿐이지만 땅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 땅은 도시 한 가운데 방치된 땅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처치 곤란한 땅일 수도, 개발 가능성에 탐나는 땅일 수도 있지요.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를 버리기 딱 좋은 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맛나는 들풀 캐면 딱 좋은 땅이었지요.
우리 게릴라 농부들에게는 생명과 삶을 퍼뜨리기 딱 좋은 땅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
상상하게 됩니다. 괜히 관심이 가고 애정이 생깁니다. 내 땅도 아닌데 이런 저런 모습으로 변화할 땅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내 모습도 웃깁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내 땅 마련’은 ‘내 집 마련’ 보다 몇 배는 어려운 도전일 겁니다. 그러나 도시를 경작하는 우리에게 ‘내 땅’이란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적힌 땅이 아니라 내가 심은 작물과 식물이 자라는 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렇게 긴 글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해 본 ‘게릴라 가드닝의 의미’는 이런 겁니다. 방치된 땅의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가꾸는 일은 ‘그 땅의 소유권을 갖기 위한 행위’이거나 ‘주인이 알면 잡혀가는 일’ 같은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이 도시-공간-터전을 내 손으로, 그리고 함께 가꾸기 위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재미있는 도시농업 이야기를 전할게요!
뉴스레터 기자단 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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