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선물
<2026년 통일쌀 벼베기 참가기>
권미정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통일쌀을 알게 된 건 2017년 봄, 철원농민회와의 교류사업으로 손모내기 행사에 참여하면서부터 였다.
그때는 민통선을 다녀올 수 있다는 호기심에 아이 손을 잡고 철원 농활에 왔다. 서툰 손으로 모를 심고, 물기 어린 논바닥을 조심조심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어느 덧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모내기는 여러 번 함께했지만 벼베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아이 대신 생일을 맞은 내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전날부터 짐을 챙겼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데도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해마다 모를 심던 그 논에서 직접 벼를 베고, 철원에서 난 농산물로 차린 들밥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일. 민통선이라는 남다른 공간에서 한 계절의 결실을 함께 거두는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생일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버스는 익숙한 길을 따라 철원으로 향했다. 도시의 건물들이 하나둘 멀어지고, 창밖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철원은 온통 가을빛이었다. 봄날 여린 손으로 심었던 모는 어느새 황금빛 벼가 되어 묵직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봄에 통일을 바라며 모를 내었다면, 가을에는 평화를 바라며 벼를 거둔다. 그런 마음을 품고 낫을 든 채 논으로 들어섰다. 한 손으로 벼 포기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낫을 당겼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벼를 베어 한 단으로 묶는 일도 도시 사람의 손에는 서툴고 더디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서툶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낫 쥐는 법을 알려주고, 누군가는 베어 놓은 벼를 모아주고, 또 누군가는 처음 온 사람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여도 논 한가운데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을 거들게 된다.


사람 사이는 아마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리라. 돌아보면 이 만남 덕분에 농민의 삶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우리 농산물도 전보다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믿음도 깊어졌다. 철원 농산물이라면 먼저 손이 가게 된 것도 그 시간과 인연이 함께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는 일.
철원에서는 그 의미가 한층 깊어진다. 북에서 내려온 물은 막힘없이 남으로 흐르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두루미는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간다. 그런데 우리는 갈 수 없는 땅을 눈앞에 두고 살아간다. “쌀부터 통일하자.” 아마 그런 간절함이 이 구호에 담겼으리라.
논일을 마치고 볏짚으로 새끼를 꼬았다.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천을 매달아 솟대도 세웠다. 바람에 살랑이는 작은 소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평화도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는 것. 처음엔 작은 마음이라도 오래 이어지면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깊어지면 서로의 삶을 쉽게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올해 내편의 생일에는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논에 발을 담그고, 한계절의 결실을 함께 거둔 하루. 사람은 사람을 통해 조금 더 넓어지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세상도 조금 더 따뜻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황금빛 철원 들녘에서 받은,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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