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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소식/다녀왔습니다

내가 사는 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feat.마을공동체의 게릴라 가드닝)

by 토달볶음 2025. 8. 28.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정해졌다.

 

  내가 사는 인천 서구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열린다고 한다. 날짜는 823, 토요일 아침이다. 장소는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이면 닿는 곳이었다

 

  게릴라 가드닝버려지거나 방치된 도심의 땅쓰레기를 치우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식물을 심는 도시재생운동이다. ‘게릴라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해당 땅에 대한 법적 소유권이 없는 시민이 불시에 땅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것에서 유래했다. 토지소유자에게 방치한 땅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도시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이다.

 

(왼쪽)서구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모집하는 포스터 (오른쪽) 게릴라 가드닝을 끝낸 마을공동체 도시농부들의 모습

 

이전에 인천에서 열린 게릴라 가드닝 활동들

 

  매년 51국제 해바라기 게릴라 가드닝 데이세계 전역에서 방치된 땅에 해바라기를 심는 날이다. 올해 인천 도심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이 있었다. 나는 소식을 듣지 못해서 참가를 못했지만,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세무서 근처 빈 땅에 시민들이 모여 쓰레기를 치우고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해바라기의 노란색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흰색과 보라색 꽃이 피는 까치콩을 함께 심기도 했다.

1차 게릴라 가드닝이 궁금해요

 

  한 달 후, 선거로 인한 임시공휴일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2차 게릴라 가드닝이 열렸다. 나는 이번에도 참가를 못했다. 모이는 시간이 새벽 5시라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오기 힘든 시간이었다. 1차 게릴라 가드닝 때 깨끗이 치운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드닝을 했던 땅이 쓰레기로 덮이고 풀이 해바라기를 가릴 정도로 많이 자랐다고 한다. 이번에는 1차 때 모인 시민들이 다시 오기도 하고 새롭게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시민들은 또다시 휴지를 줍고 꽃밭도 깔끔하게 정리하며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데 손을 보탰다.

2차 게릴라 가드닝이 궁금해요

 

(왼쪽)1차 게릴라 가드닝 활동 모습 (오른쪽) 2차 게릴라 가드닝 활동 모습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해바라기는 양분이 부족해서인지 꽃을 못피우고 있다고 한다. 대신 갔다오신 분이 전해준 사진을 보면, 펜스를 따라 까치콩 꽃이 활짝 펴서 파란 하늘과 멋지게 어울리고 있다. 펜스 안은 풀과 쓰레기 뿐이었는데  제초가 되어 지금은 인근 공사장 자재를 임시로 두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게릴라 가드닝을 했던 시민들은 공사가 끝나면 보리나 밀을 뿌리겠다고 말을 전해왔다.

(왼쪽) 꽃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오른쪽) 콩깍지와 꽃이 무성하게 피어난 까치콩

  

 

처음으로 게릴라 가드닝에 참가하다

 

  나는 인천에서 열린 1, 2차 게릴라 가드닝에  참가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 동네에서 한다면 꼭 참석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내가 사는 서구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날 밤부터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긴 팔과 긴 바지를 꺼내놓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생전 처음 참여하는 게릴라 가드닝이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가슴이 설렜다.

 

   게릴라 가드닝 장소 공사장 가림막이 건너편에 있고, 어른 허리까지 오는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신도시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빈 땅 같았다. 이곳에 공원이 만들어질 계획이 있다는데 언제쯤일지 행정기관의 담당자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 허리를 훌쩍 넘게 자란 풀이 인도까지 넘어올 정도로 땅이 방치된 상태였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군데군데 공사장이 많아서 아이들이 이쪽으로 지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심은 식물들을 볼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아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누군가 이곳에서 정원을 발견한다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게릴라 가드닝 위치

 

케나프 꽃이 반겨주었다

 

  인적이 드물고 풀이 워낙 무성해서 쓰레기는 거의 없었다. 함께 한 멤버 중 한 분이 얼마 전에 케나프를 심어두어서 그 꽃들을 경계삼아 안쪽에 작은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케나프무궁화와 비슷한 모양새로, 자줏빛 심지에 흰색 꽃잎을 가진 예쁜 꽃이다.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많아 환경 정화에 큰 효과가 있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병충해에 강하다고 한다. 잡초가 숲을 이룬 곳에서도 사람 키 정도까지 자라는 식물이라 정원의 문지기로 손색이 없었다.

정원의 문지기가 되어 준 케나프

 

 

정원 만들기는  잡초 제거로  시작된다

 

  낫으로 허리까지 오는 억센 풀을 베어내고 엉켜 있는 칡덩굴을 가위로 잘라 풀어냈다.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억센 뿌리까지 호미를 이용해 캐냈다. 아침이라도 한낮처럼 햇볕이 강해서 모두 땀을 비 오듯 흘렸고 모기의 공격을 받았다. 더운 날씨라 반바지를 입은 분이 있었는데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모기에 물리기도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몸에 기피제를 뿌렸지만 다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소용이 없었다. 내가 워낙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라 평소 같으면 십중팔구 나에게 모기가 집중되었을 텐데, 모두가 땀을 흘리니 모두 공평하게 모기밥이 되었. 고통이 분산된 셈이지만, 나에게 올 모기가 다른 사람에게 간 것 같아서 괜히 미안했다.

 

  케나프를 심었던 분이 그래도 함께하니 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 분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혼자 우비를 입고 잡초를 뽑았다고 한다. 인적 없는 풀숲에서 땅을 파던 자신이 범죄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지금의 힘듦을 이전의 더 큰 힘듦으로 되새기며 극복하고, 혼자서라도 묵묵히 게릴라 가드닝을 해내는 모습에서 자신이 사는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잡초 제거하는 도시 농부들

 

 

돌을 골라내고 씨앗을 뿌렸다

 

  풀을 모두 제거하자 겨우 땅에 흙이 드러났다. 하지만 조금만 흙을 파헤쳐도 온통 돌멩이 투성이라 한참 동안 돌을 골라내야 했다. 어느 정도 돌을 골라내고 땅에 다섯 개로 구획을 나눴다. 가운데에 동그랗게 당근을 심고 당근 주변을 둘러싼 네 개의 공간에 각각 금계국, 헤어리베치, 고수, 시금치를 심기로 했다. 화초와 허브, 채소가 골고루 들어갔고 모두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식물이었다. 다섯 군데로 나뉜 땅을 물로 촉촉하게 적셔 주고 씨앗을 뿌렸다. 그 위를 퇴비와 배양토로 덮어주고 다시 물을 흠뻑 주었다.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이후에도 비 예보는 한동안 없을 것 같았다. 씨앗이 뿌려진 흙 위에 흙이 마르지 않게 이불 역할을 할 것이 필요했다. 잘라낸 풀들을 모아서 포근하게 덮어 주고, 게릴라 가드닝을 마무리했다.

 

갈퀴로 긁고 호미로 파고 손으로 일일이 돌을 골라 냈다

 

먹지 못해도 식물은 오염된 땅을 정화한다

 

  돌이 워낙 많은 땅이라 씨앗이 잘 자랄지 걱정이 되고, 이 땅에 산업폐기물을 버렸을 수도 있어서 여기서 자라는 허브나 채소는 먹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이렇게 식물을 심으면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아무 쓸모가 없더라도 예쁜 꽃과 향기로운 잎이 자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린 싸앗들 / 씨앗을 뿌리는 모습 / 배양토 덮어주기

 

작은 정원은 작은 기쁨이 되지 않을까

 

  정원이 깔끔하게 완성된 모습을 보니 여러 종류의 풀들이 마구잡이로 엉켜 있던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져서 뿌듯했다. 우리가 손으로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는 동안 길 건너편 공사장에서 포클레인이 아파트가 세워질 땅을 파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볼 땅에 쓰레기와 잡초만 가득하다면 슬플 지도 모른다. 내가 일손을 보탠 작은 정원이 이 동네에 사는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는 동안 우리는 정원을 만들었다

 

 

틈새농부들과 함께 한 게릴라 가드닝

 

  이번 게릴라 가드닝은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선정된 <틈새농부들의 도시경작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틈새 농부는 '도시 틈새 곳곳을 먹거리 정원으로 만드는 도시민인 우리는 모두 농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게릴라 가드닝을 함께 하는 틈새농부들은 모두 서구 주민으로 우연히 산에서 만나서 공동체 모임을 함께 만들게 되었다

 

활동의 희망은, 동네사람들이 게릴라가드닝 텃밭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 공동체의 기능이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해요.

 

  틈새농부 대표가 말을 전했다. 나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기후위기와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동네의 소외된 공간에 틈새 경작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시작부터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나도 틈새 농부가 되어 내가 사는 마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데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틈새농부들의 도시경작 프로젝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미스 럼피우스>라는 그림책이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할머니가 된 미스 럼피우스는 바닷가 마을에 집을 얻는다. 그녀는 자신의 정원에 핀 꽃들의 씨앗이 바람과 새에 의해 마을로 옮겨져 꽃이 핀 것을 발견하고, 들판과 언덕을 돌아다니며 루핀 꽃의 씨앗을 뿌린다. 마을에 루핀 꽃이 가득해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미스 럼피우스가 아닌 루핀 부인이라 부르며 감사를 표한다. 세상은 아름답게 만드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꽃씨 하나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미스 럼피우스> 책 앞표지 그리고 씨앗들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내 땅이 아닌 곳에, 자랄지도 모르고 먹지 못할 식물을 심는 것이 불편하거나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쓸모 있다고 해서 모두 아름답지만은 않다. 쓸데 없어 보이는 작은 손짓 하나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삶에 윤기를 주는 것은 그저 아름답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최근 나는 본격적인 가드닝을 위해 흙을 만질 때 쓸 코팅된 원예용 장갑을 하나 마련했다. 크고 작은 모종삽 두 개와 돌을 골라내기 적합한 세발갈퀴 한 개가 포함된 원예용 3종 세트도 내 눈길을 끈다. 나의 게릴라 가드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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