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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토달의 에세이

[요리에세이] 올방개묵을 아시나요

by 토달볶음 2025. 6. 15.

양념장을 얹은 올방개묵과 부추무침

 

햇살이 뜨거워지는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

 

  자주 가는 재래시장에 단골 두부집이 있다. 늘 두부만 사갔는데 날이 더워지니 두부 옆에 놓인 도토리묵에 눈길이 갔다. 갈색의 도토리묵 옆에 하얀색 묵도 있었다. 올방개묵.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도토리묵만 사려다 묵을 하나 사면 삼천 원, 두 개 사면 오천오백 원이라는 말에 두 개를 사기로 했다.

 

  햇살이 뜨거워지는 계절이 오면 찬 것에 마음이 간다. 콩국수나 냉면, 메밀국수처럼 시원한 면을 떠올리는 이가 많겠지만, 면을 익히려면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불 앞에서 서야한다는 게 아쉽다. 수고를 덜하고 싶을 때는 묵이 최고다. 차가운 묵을 뚝뚝 잘라 제철 채소와 함께 간장과 참기름, 고춧가루에 조물조물 무쳐서 먹으면 불도 쓰지 않고 푸짐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시부모님이 옥상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와 쑥갓에 시장에서 산 부추와 햇양파를 곁들여 채소 겉절이를 했다. 쪽파를 송송 썰어 넣어서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먼저 양념장에 찍어서 묵만 입에 넣었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너무 좋았다. 녹두로 만든 청포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것보다 밀도가 있어서 젓가락으로 들어도 다른 묵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쉽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채소 겉절이와도 잘 어울렸다. 묵 자체의 맛은 거의 없지만 양념과 채소가 어우러지니 상큼하고 짭쪼름하고 씁쓸한데다 달고 아삭해서 입맛을 돋우고 속도 편했다.

 

 

올방개란 무엇일까

 

  맛있게 먹고 나니 올방개묵에 대해서 궁금증이 샘솟았다. 올방개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대체 무엇인지 상상이 안 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올방개는 논, 습지 등에서 자라는 잡초의 일종이었다. 뿌리처럼 보이는 덩이줄기 안에 영양분을 저장하는데, 콩보다 크고 밤톨보다 작은 덩이줄기를 갈라보면 고구마처럼 딱딱하고 하얀 전분덩어리가 나온다. 이 전분덩어리를 갈아서 올방개묵을 만드는 것이다.

올방개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SPECIES KOREA)

 

  모내기를 위해 논을 갈아엎을 때 올방개가 다른 잡초들과 뒤엉켜 뽑혀 나와서 농촌에서는 5월말이나 6월초인 이맘때 주로 올방개묵을 먹었다고 한다. 쌀이 귀한 시절에 구황작물로 쓰이고 벼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의 간식거리도 되었으니 올방개는 잡초라고 해도 쓰임새가 꽤 있었던 셈이다. 올방개묵은 차가운 성질 때문에 해열에 좋고, 포만감이 있는데 소화도 잘된다. 푸치인이라는 항균 성분이 있어서 열에 강하고, 쫀득한 식감도 이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올방개묵을 먹는 방법

 

  올방개묵은 요리방법이 다양하다. 소금간만 해서 참기름, , 김 가루에 깔끔하게 무치면 아이들이나 노약자도 먹기 좋다. 간장, 액젓, 고춧가루, 매실액 등등 진한 맛이 나는 양념을 더해서 신선한 잎채소를 풍성하게 곁들이면 일품요리가 된다. 차갑게 식힌 멸치육수를 더해서 묵밥을 하거나 국수대신 묵만 콩국에 넣어먹어도 잘 어울린다.

 

  요즘은 묵 가루를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어서 집에서 묵을 쑤는 게 쉬워졌다. 묵 가루와 물을 정량대로 지켜서 휘저어가며 끓여주고 서너 시간 상온에서 식히면 간단히 묵이 만들어진다. 올방개묵이나 창포묵처럼 흰색인 묵은 검은 깨를 넣어서 고소함을 더하거나 강황 가루나 비트 끓인 물, 시금치 등 녹색채소를 넣어서 다양한 색깔을 내기도 쉽다.

 

 

맛의 방주에 등재된 마름묵

 

  올방개묵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드는 마름묵이라는 게 있다. 한해살이 풀인 마름은 연못 등 마을의 물길에서 자라는데, 마름의 열매를 쪼개면 밤맛 나는 하얀 덩어리가 나온다. 이 덩어리를 갈아서 만든 묵이 마름묵이다. 전북 정읍시의 신탄진읍 고산마을에서 마름묵을 국제슬로푸드생물다양성재단이 선정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했다. 맛의 방주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종자와 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맛이 뛰어나고 지역의 생활습관이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이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음식을 조리할 때 자연의 시간에 따라 성장한 제철 유기농식품을 이용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들며,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하며 건강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름 © EBS 2020. 11. 9 <아주 각별한 기행 - 맛의 방주 1부 정읍 마름묵>

 

 

식물과 물과 불, 시간과 정성

 

  묵을 만드는 과정은 슬로푸드 그 자체다. 정성스럽고 오래 걸린다. 먼저 마름이나 올방개, 도토리, 녹두, 메밀, 우뭇가사리 등 딱딱하고 다루기 힘든 재료를 깨끗이 씻고 말려서 겉껍질을 떼어낸다. 딱딱한 속을 며칠 동안 물에 불려서 무르게 되면 믹서에 간다. 간 것을 체에 걸러 가라앉혀 앙금을 만든다. 앙금에 물을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끓이고 상온에서 굳을 때까지 식히면 비로소 묵이 만들어진다. 묵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에서 유래한 것뿐이다. 식물과 물과 불, 시간과 정성이다.

 

  묵은 거대하고 거친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스마트폰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음식에는 수많은 손길이 더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식재료들을 채집하거나 기르고 있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다듬고 있다. 끓이거나 삶기 위해 불 앞에 서 있다. 그 모든 손길에 고개 숙여 감사하고픈 마음이 든다.

 

 

제철채소와 함께 먹기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다. 여름 동안 묵과 제철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한다. 깜냥이 된다면 집에서 묵을 만들어도 좋고, 집근처 마트나 시장에서 사와도 좋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더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형편이 안 되면 사온 채소를 더해서 갖은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쳐 보자. 이제 입에 넣어 맛있게 먹는다. 행복과 건강함이 함께 어우러진다.  

 

 

<토달의 레시피 : 올방개묵 부추 무침>

1. 올방개묵을 먹을만큼 준비한다. (높이가 5cm정도면 손가락 포함한 손 하나 크기가 혼자 먹기 적당하다.)

2. 부추를 1/4단 준비한다. 물에 씻기 전에 상한 잎과 흙덩이 등을 제거해 깨끗이 다듬는다. 물에 씻는다.

    가로로 길게 두고  5cm 정도 길이로 세로로 썬다.

3. 깻잎, 쑥갓, 상추 등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잎채소들을 대충 모아서 가로로 길게 두고 손가락 한마디 정도 넓이로 세로로 썬다.

4. 양파를 1/4 정도 준비하고 길게 썬다. 햇양파라면 맵지 않고 아삭하므로 더 많이 넣어도 괜찮다.

5. 양념장을 만든다. (어른 밥숟가락으로 간장 3, 식초 2, 액젓 1, 매실액 1, 들(참)기름 1, 간마늘 1,  고춧가루 1, 깨 1)    

6. 올방개묵을 먹기 좋게 자른다. 

7. 부추 등 잎채소 썬 것에 양념장을 몇 숟갈 넣고 무친다. 묵과 먹어야하니 조금 짜게 무쳐야한다. 

   잎채소가 양이 많아 싱겁다면, 간장이나 액젓 중에 좋아하는 맛을 반숟갈씩 더해가며 맛을 맞춘다.

   매운 맛을 좋아하면 고춧가루나 간마늘을 좀더 넣어도 좋다.

   고소한 맛을 좋아하면 깨를 더 넣는다. 들(참)기름은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하다. 더 넣지 말자.

   단맛은 건강에 좋지 않고 너무 달면  맛이 떨어진다. 매실액으로 만족하자.

8. 접시에 올방개묵을 깔고 위에 부추무침을 올린다. 

9. 올방개묵 하나에 부추무침을 적당히 올리고 한 입 먹어본다. 싱거우면 양념장을 좀더 만들어서 올방개묵에 끼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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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기자단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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