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들녘에 드러난 한반도, 통일논 벼베기를 다녀왔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 아침 7시,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버스 두 대가 철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지난 5월 30일 민통선 안 통일논에 한반도 모양으로 심었던 토종벼를 거두러 가는 길입니다. 버스 안에서는 이번 행사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농민회 행사마다 빠지지 않는 '농민가'를 다시 불러보며 배웠습니다. 봄에 처음 배운 노래를 가을에는 제법 따라 부르는 걸 보며, 한 해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었습니다.
봄에 모를 심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 이날을 기다린 이가 있습니다. 붉은차나락 모판을 인천에서부터 키워 온 논습지동아리입니다.
"철원 통일논에 한반도 모양으로 심어진 붉은차나락은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한 마음 가득했지만 논의 위치가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며, 출입 시 신분 확인과 관할 군부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한 민통선 안에 있다는 점 때문에 선뜻 나서지를 못했었다." — 오송원(논습지동아리)
민통선 안의 논은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반년 동안 궁금했던 그 한반도를 이날에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황금 들녘의 한반도
노동당사 주차장에서 모여 6사단 초소를 지나 철원읍 내포리 평화의 논에 닿았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과 철원군농민회가 마련한 벼베기 행사에는 철원과 강원의 농민, 인천과 춘천의 도시농부까지 200여 명이 모였습니다. 논 앞에는 무대와 의자가 놓이고 천막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설문에 "무대와 의자를 본 순간, 이렇게 행사같이 하다니" 하고 놀란 마음을 적었습니다. 그만큼 농민회가 이날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우상호 강원도지사도 행사에 참여하면서 많은 내외빈이 찾아주었습니다.

들녘 한가운데 한반도는 봄보다 훨씬 또렷했습니다. 노랗게 익은 오대벼 사이로 붉은 기운을 띤 토종벼가 한반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농민회는 벼베기를 위해 한반도 외곽을 미리 베어 길을 내 두었습니다.
이 논의 물은 북녘에서 흘러오는 한탄강 줄기에서 옵니다. 분단으로 나뉜 물을 모아 키운 벼라는 이야기를 봄에 김종필 철원군농민회장에게 들었는데, 가을 들녘에서 그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폭염을 견딘 붉은차나락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인천에서 같은 토종벼를 키운 논습지동아리는 작황 때문에 마음고생이 컸습니다.
"올해 우리가 인천에서 재배한 벼는 작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한여름 기온이 36~37도를 웃도는 더위 때문인지, 극심한 노린재 피해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재배 기술이 부족했던 탓인지 분얼이 적고 하얀 쭉정이가 많이 보였다. (…) 다행히 통일논의 붉은차나락은 분얼도 잘되고 알도 통통하게 여물어 있어 안도했다." — 오송원
붉은차나락은 중만생종이라 조생종인 오대벼보다 늦게 익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논은 철원에서도 가장 늦게 추수하는 논이 되었습니다. 오송원 회장이 철원 농부님께 들은 이야기도 함께 옮깁니다. 철원 오대벼는 5월 10일께 모내기를 하고, 7월 10일께 웃거름을 주고, 7월 20일께 이삭이 팹니다. 한 포기에서 줄기가 16개까지 갈라진다고 합니다. 같은 들녘에서 자란 벼라도 품종마다 시간표가 다르다는 것을, 직접 농사짓는 사람에게 들으니 더 실감이 났습니다.

낫을 들고 논으로
개회식을 마치고 모두 낫을 들고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줄을 지어 벼를 베고 볏단을 묶었습니다. 이날 특별한 손님도 있었습니다. 우상호 강원도지사가 벼베기에 함께하고 농민들과 새참을 나눴습니다. 새참 간담회에서는 쌀 수급과 가격 안정, 농자재와 경영비 부담 이야기가 오갔다고 합니다. 우 지사는 "철원은 강원 쌀 농업의 중심이면서 분단과 접경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강원일보, 10월 3일).




"취재진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볏단을 들고 논 한가운데로 모여 사진으로 남기는 사이, 붉은차나락 몇 포기가 발에 밟히거나 카메라 삼각대 아래 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수확하는 기쁨 속에서, 여름을 견디고 알곡을 맺은 벼가 밟히지 않도록 이동하는 길과 볏단을 모아둘 자리를 미리 함께 살폈다면 좋았을 것이다." — 오송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한반도를 붉게 그려 준 붉은차나락의 이름과 심은 뜻을 잠시라도 소개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겼습니다. 내년 행사를 준비하며 꼭 기억해 둘 대목입니다.
홀태로 훑고, 새끼를 꼬고
점심 들밥을 먹은 뒤에는 체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홀태로 낟알을 훑고,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소원지를 적어 솟대에 매달았습니다. 홀태 탈곡은 오송원 회장이 맡았습니다.
"탈곡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손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홀태 탈곡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벼 품종인 '붉은차나락'과 탈곡 도구인 '홀태'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준비했다." — 오송원
새끼 꼬기는 의외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할 수 있을까 망설였는데 하고 있더라구요, 너무 신기했어요"라는 소감이 나왔고, 한 참가자는 "사람과 사람이 새끼줄처럼 이어지듯 북한과의 평화통일이 되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봄에 상자논에 모를 심어 간 가족들은 집에서 키운 벼 사진을 들고 와 품평회를 열었습니다. 화강두루마당의 풍물 가락이 들녘을 한 바퀴 돌며 흥을 돋웠습니다.



붉은차나락, 인천으로
행사가 끝나갈 무렵 농민회에서 부탁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붉은차나락은 오대벼와 함께 탈곡기에 넣기 어려우니, 따로 거두어 인천으로 가져가 도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계로 한꺼번에 작업하는 철원 논에서 손으로 벤 토종벼는 따로 다뤄야 하는 손 많이 가는 벼입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보태니 지푸라기와 뒤섞여 있던 벼를 자루에 담는 일이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 손을 모으면 되지.' 조금 전까지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 오송원
파란 방수포 위에 흩어진 낟알을 모으는 손길들을 보며, 이 쌀이 왜 '함께' 거둔 쌀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붉은차나락은 해바람텃밭으로 옮겨졌고, 이제 정선과 도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일도 논습지동아리 회원들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노동당사 앞에서
마지막 일정은 노동당사였습니다. 해방 이후 철원이 겪은 수탈과 전쟁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참가자는 "산증인에게 듣는 것이라 의미 있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생애 처음 민통선에 와 봤다는 분은 "월정리역 화장실도 가 보고, 맛난 들밥도 먹고, 하루가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긴 소감을 남겼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받은 설문에는 21명이 답했습니다. 전반적인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4.81점, '도농교류 행사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다'는 문항은 평균 4.71점이었습니다. 소감 가운데 이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벤 한 포기 벼가 남과 북 통일의 쌀 한 톨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준비하느라 애쓴 철원 농민들께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을 더 넓히자, 뒷정리를 농민들께만 맡겨 민망했다는 반성도 있었습니다. 13년을 이어 온 관계가 이제 손님과 주인을 넘어 함께 차리는 잔치가 되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쌀은 어디로 가나요
이날 거둔 통일쌀은 '2026 철원통일쌀 펀딩'에 참여한 분들께 11월 말 배송될 예정입니다. 철원오대쌀과 함께, 인천으로 가져온 붉은차나락을 따로 조금씩 담아 보낼 계획입니다. 한반도를 그렸던 바로 그 쌀입니다. 펀딩 수익금은 철원군농민회가 해마다 후원해 온 재일 조선학교를 돕는 데 쓰입니다.
"내년에는 한반도 지도를 더 크게 그리고, 더 많은 토종벼를 심는다고 한다. 토종벼의 이름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그 결실을 소중히 거두는 시간도 넉넉히 마련되기를 바란다. (…) 멀리 철원 땅에서 더운 여름을 견디고 알곡을 맺어 준 붉은차나락이 고맙다." — 오송원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두는 일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습니다. 올해는 토종벼가 한반도를 그렸고, 더 많은 이웃이 함께했습니다. 펀딩 참여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통일의 밥상에 한 숟가락 보태 주세요.
- 통일쌀 펀딩 참여하기: https://forms.gle/n6SUhq9YzKsLAjyh8
























함께 보기
- 통일쌀 펀딩 참여하기: https://forms.gle/n6SUhq9YzKsLAjyh8
- 2026 통일쌀 펀딩 프로젝트 사이트: https://sites.google.com/dosinong.net/rural-urban-linkages/2026-%ED%86%B5%EC%9D%BC%EC%8C%80-%ED%8E%80%EB%94%A9-%ED%94%84%EB%A1%9C%EC%A0%9D%ED%8A%B8
- 벼베기 사진 앨범: https://photos.google.com/share/AF1QipMz7bjJZ5f-NkZq6PsfKzYDQJ3HMje9cy2wrI-K3-v_48VVUg3ew7tYBHwWAd9yNQ?key=MzRIRVE3SzVkUmdrNDIzb0dWdVktZWl6Vk55M25B
- 오송원, 「뭉클한 논아트 그리고 벼베기가 남긴 숙제」: https://cafe.naver.com/pwcolab/165
- 강원일보, 「"통일쌀 베며 평화 염원" 우상호 철원 통일논 벼베기 동참」: https://www.kwnews.co.kr/article/20261003500101
- 지난 이야기, 철원 통일논에 한반도를 그리고 토종벼를 심었습니다: https://blog.dosinong.net/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