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움츠러드는 쌀쌀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요즘 오목눈이 기자는 농사일이 한가해져 다른 일들을 잔뜩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왜인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는데요, 자주 끼니도 거르고, 한꺼번에 폭식하고, 늦게까지 일하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간 계속 속이 얹힌 채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오랜만에 토종농부단에 나간다며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요, 그만 어제 먹은 밥이 소화되지 않은 채 탈이 났습니다. 요즘 들어 계속 속이 얹힌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죠.
그 덕에 배추위에 예쁘게 내린 서리꽃도 못 봤고, 수확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식사 자리는 꼭 참석하고자 충분히 속을 가라앉히고 인도농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인도농 사무실에 도착하자 토종농부님들이 입술이 하얗다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한 농부님은 손을 따뜻하게 주물러 주시고, 등과 팔, 어깨를 마사지 해주셨습니다. 꽉 뭉친 근육과 손바닥 중앙이 어찌나 아프던지, 꾸욱꾸욱 따뜻한 걱정을 듬뿍 몸으로 받으니 덜컥하고 뭉쳐있던 체기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몸 전체가 따뜻해지고, 속이 편해지자 등을 톡 치시며 “이제 먹을 수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먹고 싶은 요리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언제 와서 준비하셨는지, 겉절이로 쓰일 양념장이 뚝딱 만들어져있었고, 배추전과 무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사이에 또 새로운 요리가 나왔는데요. 무를 데친물이 아까우시다며 그 물에 배추와 무청을 살짝 데칩니다. 간장, 액젓,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틈새 요리는 짜지도 않고, 담백하고 아삭한 식감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나 둘 배추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태껏 먹은 하얗고 노란 알배추로 한 배추전과 맛이 사뭇 달랐습니다. 부침물에는 간장과 다진마늘을 넣는게 킥! 그리고 부침가루에 쌀 부침가루를 섞어주는게 킥!이라고 씨앗이 공유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단단한 조직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배추전이 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지껏 부침물 맛에 먹는 배추전인줄 알았는데, 구억배추로 만든 배추전을 씹을 때마다 배추의 독특한 향이 톡톡 올라왔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구억배추로 만든 겉절이를 씹으면 씹을수록 으잉? 배추의 향이 원래 이렇게 진했던가? 싶었습니다. 풋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풋내 같으면서도 끝으로는 배추의 향긋한 본연의 향으로 도달했습니다.
무전을 처음 먹어봤습니다. 소금간을 한 물에 살짝 데쳐서 부침옷 입혀 구워준 무전은 고소하면서 씹히는 식감이 정말 좋았습니다.
겉절이와 양푼이 있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밥을 데피고, 양푼에 겉절이와 고추장, 참기름을 조로록
숟가락과 손이 삼삼오오 모여 슥삭슥삭 빠알간 색이 잘 나오도록 섞어줍니다.


파종부터 가식, 보식, 물주기, 한랭사를 옹기종기 치며 어색했던 서로가 이제는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사이가 되어간 것처럼. 비빔밥의 재료들도 먹음직스럽게 섞여갔습니다. 기대감을 품고 한입. 어쩜 이렇게 배추의 향이 절묘하게 고추장 맛 사이사이로 스며있는지 식감은 아삭아삭. 고소한 참기름 향도 올라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졌습니다.
토종농부님 한분이 철원 오대쌀로 만든 ‘삼양주’ 소개를 안 할 수가 없지요. 지난 시간에 아직 덜 익었지만 맛 보여주고 싶으셔서 가져온 술을 마시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제대로 익은 맛난 삼양주가 구억배추의 알싸한 향과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전이 부쳐지는 족족 아가새들이 벌레를 받아먹듯 토종농부님들의 입으로 가서 남아있는 전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살아남은 전들과 비빔밥, 겉절이, 배추무침, 떡, 술, 과일, 과자 등 각자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한상에 올려두니 임금님 밥상 안 부러운 든든한 한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번 식사의 꽃은 수다타임이었어요. 토종농부단을 하며 힘들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시작으로 그간 있었던 재미있었던 경험들을 보따리 장수처럼 풀어놓는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어요. 너무 많이 웃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광대가 욱신거렸답니다.
식사를 마친 토종농부단은 마지막으로 수확한 배추와 무를 신문지에 고이 싸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이렇게 종료되는 건가요? 그럴리가요. 배추를 심고 맛을 봤으면, 이제 배추가 월동하는 것도 보고, 꽃대가 올라오는 것도 보고, 직접 채종을 해봐야 1년 배추농사를 끝냈다고 할 수 있겠죠?
모든 생명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안고 있고, 끝임과 동시에 다시 시작을 마련합니다.
토종농부가 된다는 것은 작물의 시작을 끝에, 작물의 끝을 다시 시작에 단단히 매듭을 연결 짓는 존재가 된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듬직하게 추운겨울을 보낼 토종배추의 힘을 믿으며, 꽃대가 올라오는 봄에 우리 다시 만나길 바라요! 그동안 참 고생많았습니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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