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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있는가?

by 보늬bonniee 2025. 10. 2.
익산고구마밭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이 수확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황교익 페이스북


기후위기 시대,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지난해 국내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자는 9,219명에 달했다. 2020년 7,583명에서 4년 만에 20% 이상 늘어난 수치이며, 같은 기간 사망자도 114명에 이르렀다. 특히 농업·어업 분야의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자는 2020년 149명에서 2024년 293명으로 늘어, 불과 4년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단순히 농업 현장에서 사고가 늘었다는 통계가 아니다. 기후위기, 열악한 노동 조건, 부실한 안전망이 동시에 작동하며 이주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경고다.

올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 들판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냉방 장치가 없는 숙소, 그늘조차 부족한 작업 현장, 무더위에도 멈추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 같은 조건에서 내국인 노동자는 일찍 작업을 멈췄지만, 이주노동자는 오후까지 일을 이어가다 목숨을 잃은 사례는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산업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곧 인권의 문제이며, 농업 공동체의 도덕적 책임을 묻는 물음이다.

한국 농업은 이미 이주노동자의 땀과 노동 위에 버티고 있다. 농촌 고령화와 인력 부족 속에서 이들이 없다면 제때 모종을 내고 수확을 마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농업의 기반을 떠받치는 이들이 정작 공동체의 보호 밖에서 일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은 모순이다. 이주노동자를 ‘임시 고용된 외부인’이 아니라 농업을 함께 지탱하는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허상일 뿐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채소와 곡식, 과일은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왔다. 그렇다면 도시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농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폭염 속 노동자의 죽음을 사회 전체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국어 안전지침과 폭염 대응 매뉴얼이 현장에서 실제로 쓰일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고민해야 한다. 법으로 보장된 휴식권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지켜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지역 공동체와 도시 시민사회가 연대해 ‘이주노동자 건강·안전 네트워크’를 만들고, 위기 상황에서 함께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이주노동자는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우리의 식탁을 지탱하는 동반자다. 폭염은 자연의 재앙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것은 사회가 만든 비극이다. 농업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은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의 땀은 곧 우리의 삶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농업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도시와 농촌을 잇는 시민으로서 우리는 누구의 생명을 우선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답은 이미 분명하다.
 

권미정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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