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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리뷰] 농사를 넘어 문명을 디자인하다: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도시농업의 미래

by 아메바!(김충기) 2026. 3. 3.

2026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총회, 그 신선했던 모멘텀

 

지난 2026년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정기총회는 기후 위기라는 파고 앞에서 도시농업 활동가들이 어떤 생존 전략을 구축해야 하는지 확인하는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 가장 신선한 '모멘텀'을 제공한 것은 퍼머컬처네트워크의 소란 대표 활동가의 특강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베테랑 활동가들에게 퍼머컬처네트워크가 던진 충격은 신선했습니다. '대표'도 없고 '사무실'도 없는 이른바 점조직 형태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전국적인 실행력을 갖추고 85%라는 경이로운 회원 전환율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번 특강은 퍼머컬쳐 텃밭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회복력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퍼머컬처의 본질적 정의부터 그들이 실천 중인 문명 디자인의 전략을 보여줍니다.

 

농사를 가장한 '혁명가들의 문명 설계도'

우리는 흔히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예쁜 정원을 가꾸는 생태 농법 정도로 알곤 합니다. 하지만 소란운 퍼머컬처의 본질이 "농사를 가장해서 혁명을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 역사적 뿌리와 혁명성: 퍼머컬처는 1968년 세대의 생태마을 운동에 그 뿌리를 둡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 의식주를 자급하고 돌봄의 공동체를 설계하려던 히피들의 '문명 설계 철학'이 바로 퍼머컬처입니다.
  • K-퍼머컬처의 재발견: 역설적이게도 퍼머컬처의 핵심 원리인 순환과 협력은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농업에 이미 존재했던 방식입니다. 서구의 이론이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재발견하여 체계화한 셈입니다.
  • 국가 문명을 디자인하다: 퍼머컬처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동티모르의 경우, 21세기 신생 독립 국가로서 IT나 핵발전이 아닌 생태 자원을 국가 건설의 기초로 삼고 퍼머컬처를 초등학교 정규 교과서 과정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는 퍼머컬처가 단순한 농법을 넘어 국가와 문명을 디자인하는 도구임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 재난 대비와 돌봄의 기술: 기후 위기 시대에 퍼머컬처는 '재난 수업'이 됩니다. 석유가 고갈된 시대에 누구와 무엇을 나눌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설계 안에 포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돌봄의 기술'이 퍼머컬처의 진짜 얼굴입니다.

이러한 전복적인 철학은 '네트워크'라는 유연하고도 강력한 조직 운영 방식을 통해 비로소 현실화됩니다.

 

조직 운영의 혁신: '상상 뽕'으로 연결된 리좀(Rhizome) 조직의 힘

퍼머컬처네트워크는 기존의 위계적인 위원회 구조를 탈피하여, 개인이 씨앗이 되고 거점이 연결되는 '점조직(Rhizome)' 형태를 지향합니다.

  • 전략적 유연성과 13개 지구: 전국에 13개 지역 지구를 두고 사무실 없이 운영됩니다. '대표' 대신 '대표 활동가' 체제를 유지하며 위계를 무너뜨린 덕분에 현장의 기동성은 극대화됩니다.
  • 72시간 PDC와 '상상 뽕'의 메커니즘: 이들의 결속력은 72시간의 PDC(Permaculture Design Course) 과정에서 나옵니다. 단순히 농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과 공간을 10~30년 단위로 직접 비전닝(Visioning)하며 이른바 '상상 뽕'을 맞게 됩니다. 자신의 상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강력한 효능감이 이들을 현장에 남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 현장 기동대, '삽질단'과 '톱질단': 이들은 교육이 끝나면 흩어지는 수강생이 아닙니다. 밭을 만드는 '삽질단'과 시설을 짓는 '톱질단'으로 변모해 전국 각지의 생태 거점을 품앗이로 일굽니다.
  • 관계의 밀도와 데이터: 수료생의 85%가 회원으로 전환되고, 2박 3일간의 불편한 캠프형 행사에도 회원의 50% 이상이 참여한다는 수치는 이 조직이 단순한 단체를 넘어 '삶의 양식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조직의 유연성은 곧 기존 자본주의 시장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실험들을 가능케 하는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사회적 실험과 제도화: 탄소 소득에서 '선물 경제'의 피칭데이까지

퍼머컬처네트워크는 철학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활동가의 삶을 지탱할 구체적인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1. 탄소 기본소득의 현실화: 무경운 농법으로 토양에 탄소를 저장하는 '기후 농부'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현재 토양 탄소 100kg 저장 시 1만 원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2026년까지는 1톤당 2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여 기후 기여도를 정당하게 보상할 계획입니다.
  2. 퍼머컬처 인증제와 독자적 시장: 자본의 논리가 아닌 퍼머컬처의 가치로 생산물을 인증합니다. 이를 통해 '돌보장' 같은 장터에서 서로의 노고를 신뢰하며 소비하는 우리들만의 독자적인 시장 모델을 형성합니다.
  3. 선물장과 피칭 데이(Pitching Day): 12월에 열리는 '선물장'은 단순한 나눔터가 아닙니다. 활동가들이 사이더 바(Cider Bar) 개설이나 퀴어 축제 기획 등의 아이디어를 던지면, 회원들이 돈과 공간, 노동력을 후원하는 '피칭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이는 자본에 구걸하지 않고 공동체의 힘으로 새로운 사업을 인큐베이팅하는 방식입니다.
  4. 풀방과 10%의 티핑(Tipping): 비영리 공제회 '풀방'과 연대하여 활동가들의 상호부조 시스템을 만듭니다. 특히 공동체 통장의 10%를 티핑하여 생태적 장례식 기획이나 소외된 영역의 실험적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이러한 실험들은 결국 '농사 그 자체보다 농사를 통해 어떤 시민으로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갖게합니다.

 

가장자리(Edge)에서 피어나는 3.5%의 혁명

도시농업 활동가로서 이번 특강은 농사의 목적을 '생산'에서 '시민성'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질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가장자리의 확장: 퍼머컬처에서 숲과 들판이 만나는 '가장자리'는 생물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곳입니다. 우리 운동 역시 퀴어 퍼머컬처, 몽골 재야생화 프로젝트 등 사회적 변두리와 연결될 때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편견 없는 생태계처럼, 우리의 텃밭도 모든 존재를 환대하는 가장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 3.5%의 법칙과 생태 거점: 역사적으로 박근혜 탄핵이나 미국의 민권 운동처럼 전 인구의 3.5%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전국에 생태 거점을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 3.5%의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 문명을 전환하기 위함입니다.
  • 질적 전환: 이제 우리의 질문은 "상추를 얼마나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상추를 매개로 누구와 연결되고, 어떤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낼 것인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생태 거점'을 만드는 여정에 초대하며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목표는 의외로 소박합니다. 바로 "근근이 먹고사는 행복"입니다. 이는 자본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의 주권을 회복하고, 이웃과 나누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도시농업 또한 단순한 취미나 소일거리가 아닙니다. 사유지를 넘어 공유지를 기반으로 한 생태 거점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구조를 짜는 '사회 설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300명의 회원이 만드는 촘촘한 구조가 확산될 때, 비로소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구는 작은 도시텃밭이 기후 위기를 넘어서는 '좋은 삶'을 디자인하는 혁명의 기지가 되기를 꿈꾸시나요? 그 뜨거운 마음의 불씨를 다시 살릴때 도시농업운동도 새롭게 점화되겠죠.

 



특강영상 다시보기

https://youtu.be/pRMs0P-unUQ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블로그

https://cityfarme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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