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동네살이를 시작하다] ① 동네에 변화주기
일터와 삶터 모두에 속하지만 속해있지 않은 것 같고
일주일이 지나도 길가 화단에 그대로 있는 쓰레기를 못 본척 그냥 또 지나치고
이따금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조차 건네기 어색한
겉절이 같은 도시인의 동네살이 시작 이야기
동네에 변화 주기
"어, 해바라기 꽃 폈다!"
10월 14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스타벅스 옆 빈 터, 펜스를 뒤덮은 까치콩의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노랗고 작은 해바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누구도 나의 은밀한 흥분과 기쁨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 해바라기의 의미를.

이 곳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국이 위치한 동네다. 지난 5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네트워크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새벽에 펜스를 따고 들어가 사람들이 펜스 안으로 버린 온갖 쓰레기를 주웠다. 음료를 먹고 버린 플라스틱 컵이 가장 많았고 키보다 더 큰 화분과 목발도 있었다. 10포대가 넘는 쓰레기를 치우고 펜스를 따라 해바라기와 까치콩을 안쪽에 심었다.
허락받지 않은 장소에서 행위를 한다는 두려움은 함께하는 열정적인 회원들의 웃음과 말소리 틈에서 흩어졌다. 누구도 관심갖지 않았고 자유로웠다. 도시의 방치된 터가 쓰레기가 아닌 꽃과 채소로 채워지는 모습을 그리며 늦여름 커다랗게 얼굴을 드러낼 해바라기 아래서 이 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뜻밖의 기쁨을 얻길 기대했다. 사실 우리의 기대는 더 큰 것을 담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먹거리정원이 도시농업의 상징처럼 자리잡는 것이다. 누구나 들어와서 채소를 돌보면서 자연과 연결되고 이웃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 말이다. (관련 기사 https://blog.dosinong.net/56)
올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펜스 안에서 관리를 받지 못한 해바라기는 젓가락처럼 가늘게 줄기를 올렸다. 새 잎이 채 크기도 전에 아래 잎이 갈색으로 말라갔다. 그래도 다른 줄기들과 벗하며 조금씩 키를 키웠다. 그 사이 펜스를 뒤덮은 까치콩은 또 감아올릴 데를 찾는 듯 덩굴줄기를 인도 쪽으로 뻗고 연자주빛 꽃을 피웠다.


어느 날 풀이 싹 정리되어 누런 땅이 드러나고 컨테이너와 자재들이 들어왔다. 근처 경찰서 신축에 쓰이는 자재였다. 땅 주인의 허락을 받은 듯 뒤쪽으로 새로 문을 내고 자물쇠를 달았다. 다시 펜스를 따고 들어갔다가는 경찰서 건축물 자재를 훔치는 대범한 범인이 될 판이다.
다행히 펜스를 따라 심은 해바라기는 건드리지 않았다. 해바라기가 힘겹게 키를 키우는 동안 돌콩, 박주가리, 산국, 사데풀, 자귀풀, 바랭이... 빈 터는 또다시 생명력 강한 들풀과 사람들이 던진 쓰레기로 채워졌다. 공사는 끝났지만 컨테이너와 남은 자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늦가을, 해바라기가 꽃을 피웠다. 곧 나머지 꽃봉오리들도 팡팡 터질 것이다. 해바라기 아래 펜스에 다시 한번 현수막을 펼쳐야겠다. "빈 땅에 생명을!"
그 사이 인천 서구,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빈 터에 채소와 꽃을 심는 활동을 사부작 했다.
아파트 앞 도로가 화분에 자주완두와 토종 감자를 심었다. 영양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흙이라 잘 자랄까 반신반의했지만 약간의 수확도 있었다. 어머니는 딸이 한 일을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경로당에 얘기하셨다. 어르신들이 오가며 물도 주고 완두도 따셨다.






지난 8월에는 서구에 거주하는 뉴스레터 기자단 토달과 고아라 텃밭활동가, 그리고 연결해서 참여하게 된 몇 분이 모여 서구 아라동의 방치된 공원에 가드닝 활동을 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https://blog.dosinong.net/75)
금계국, 헤어리베치, 고수, 시금치, 당근을 심었는데 워낙 땅이 척박해서인지 드문드문 힘겹게 키를 키우고 있다. 내년에는 파고라를 가득 덮은 칡덩굴을 거두고 수세미와 호박을 심을 계획이다.


동네 여기저기 허락받지 않은 장소에 작물을 심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동네 이웃들이 관심을 보이고 함께 가꾸어 나가며 멋진 채소텃밭이 완성된 그림을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상상과 크게 다르다. 계절이 바뀌니 공간도 변화를 필요로 한다. 빈 화단과 공터는 또다시 쓰레기가 쌓인다.
지속적인 돌봄이 관건이고 가장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결정적으로 핵심은 사람이다. 채소의 씨와 함께 관계의 씨를 뿌려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도시인의 동네살이, 다음은 사람 얘기로 이어가고 싶다.
뉴스레터 기자단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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