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의 서가

[서평] 만물은 서로 돕는다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조이 :-) 2025. 8. 31. 18:31

 

만물은 서로 돕는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원제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1902년)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은이)  김영범 (옮긴이)  | 르네상스

 

 

 

ㅣ서평 김보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이사, 도림공동체텃밭 회원

 

 

크로포트킨이 밝힌 자연의 법칙과 진화의 요인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원시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문맹과 물질의 풍요로움이 부재한, 인간답지 못한 삶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2년 전 아마존에서 살아남은 형제들에 대한 기사[각주:1]를 읽은 적이 있다. 비록 밀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쳐도 그 형제들의 생존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었지만, 형제적 관계와 생존 감각이 없었다면 4형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책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크로포트킨의 1902년 발간된 만물은 서로 돕는다이다.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호부조상호지원의 다양한 사례를 폭넓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책은 꽉 차 있다.

 

일단 저자는 동물의 세계 속 상호지원에 대해 자신이 관찰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필두에 적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 당시 다윈(Darwin) 저서의 일부 내용을 사회진화론으로 발전시킨 학문 그리고 사회 전반에 퍼져가고 있던 경쟁과 투쟁 옹호에 대한 반론에서 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관찰한 동물의 세계에서 종간의 혹은 다른 종간의 생존을 위한 혈투보다는 협력의 모습을 더욱 많이 관찰할 수 있었음을 적고 경쟁이 공동체의 진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상호 협력이 더욱 큰 요인이었음을 피력하고 있다. 공생은 평화 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모의 서로 돌봄, 이웃의 서로 돌봄이 동물의 집단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첫 머리에 소개한 밀림에서 살아남은 4명의 아이들은 부모 중 엄마가 원시부족 출신으로 아이들은 밀림에서 피해야 할 독사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미개인과 원시부족의 현존은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게 중요한 점은 왜 아직까지 원시공동사회가 존재하고 있는가 혹은 존재할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이내 그러한 질문이 우매하고 교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시사회의 생존은 우연의 결과이다.

 

 

우리는 빙하기가 지상 전체에 걸쳐 단번에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만 한다. ... 당시 그 지역은 오늘날의 시베리아 북서 지역의 황량한 숲과 비슷해서 문명과 접촉할 수 없었던 지역 주민들은 후빙기 초기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 지역이 건조해져서 농사짓기에 더 적합한 곳이 되자 더 문명화된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자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일부는 새 정착민에게 동화되었고, 다른 일부는 그 지역의 오지로 더 깊숙이 들어가 살았으며,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런 오지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있다. (p. 107)

 

 

지구 환경의 변화가 모든 대륙과 마을에 동등하게 출현했던 것이 아니며, 자신의 터전을 옮겨가며 생존하고 지금까지 공동체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시인은 문명의 출현과는 또 다른 인류 진화와 생존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19세기 당시 원시인과의 만남과 원시공동체 내부에서 생활했던 연구자 혹은 선교사들의 증언과 저술로 원시공동체사회의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이 공동체의 생존에 중요한 가치였음을 설명해 내고 있다.

 

 

지난 세기 사람들은 미개인과 그들의 자연상태에서의 삶을 이상화했다. 그러나 이시대의 과학자들은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아갔다.... 그러나 원시적인 사람들은 혹독한 생존투쟁의 필연성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유지된 한 가지 특성을 갖고 있으니, 자신의 삶을 종족의 삶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pp. 134-135)

 

 

현대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원시적인 생활 모습이며,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늑대와 춤을혹은 부시맨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원시공동체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전환이 되었다.

 

원시공동체 사회의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을 소개하는 것에 이어 바로 저자는 중세의 사회적 부조와 지원을 소개한다. 이 점은 이 책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중세의 시대적 가치를 신 중심의 사회이며, 인간 중심의 사회로 가는 길목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우리가 관광지로 여행하며 보게 되는 정교한 양식의 건축물과 미술작품이 대부분이 중세에 공동체의 자발적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의 창발성이 자유로운 공동체 속에서 발현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 폴리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공동의 자산 운영과 공동의 소유 방식은 중세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조차 공동의 협력 체계는 유지되었음을 강조했다. 저자는 인간의 진화가 개체군과 공동체 사회 내 협력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었음을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중세사회까지 이어져 왔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한 번영은 15세기 국가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탄압과 법적 재제로 막을 내려야했음도 서술하고 있다.

 

영국의 인클로져 운동이 그러했고 중앙집권적 왕권과 신권을 강화하면서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을 바탕으로 발달했던 중세 사회는 국가 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법과 체제가 견고해지고 돌봄과 연대가 하나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이름으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을 겪으며 도시가 발전하고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협력적 관계는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의 형태로 마을과 공동체에 남아 중앙집권적 국가의 틈틈이 사람들 간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마을 공동체의 요구와 필요에 응답했던 흔적을 남겼다.

 

 

스위스 마을에서 아주 많은 상호부조 관습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호두를 까기 위해 매일 집을 바꿔가며 열리는 저녁 모임. 결혼할 처녀들이 예물을 바느질하기 위해 모이는 저녁 모임. 집을 짓거나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그리고 공동 소유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온갖 종류의 작업을 하기 위해 요청하는 도움’. 아이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 두 언어를 익히도록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아이들을 보내는 관습. 스위스에서 이런 모든 일은 아주 관례화되어 있다. (p. 256)

 

 

저자는 당시 스위스의 마을에서 행해지는 전통과 러시아에서 마을을 운영하는 방식을 그곳에서 직접 살아가고 있는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사회가 지켜가고 마을 공동체가 유지되는 곳에서 발견되는 상호부조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단체 전환위원회에서 읽은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2년여 시간을 두고 두 번의 정독을 한 책이기도 하다. 100여 전에 쓰여진 책을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려고 하니 시대를 반추해서 읽기의 의미가 어떠했는가의 소감들이 오고 갔다. 솔직한 나의 소감은 여전히 책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의미들로 흥미로웠다이다. 현실의 벽을 알지 못하고 정책과 행정의 먹통을 경험하지 못한 나의 감상일 수 있다. 그러나 늘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우정으로 우리의 돌봄에 감사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박함이 우연을 통해 나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음을 떠올리며,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신념이 아니라 물질의 진화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 또한, 도시농부들과 함께 읽기를 소망해 본다.

 

  1. 아마존 추락한 아이들, 40일 만에 '기적의 생환'1살도 있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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