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달걀 스프, 나를 돌보는 음식
영혼을 위한 음식이 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라는 책이 있다. 미국에서 감기몸살에 걸렸을 때 먹는 닭고기 스프에 빗대어 작가가 위로와 치유를 전해주는 짧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마음을 울리지만 이 책은 내용만큼이나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한동안 요리법으로 치킨누들스프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인터넷에 ‘닭고기 스프’를 검색하면 ‘영혼을 위한’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집안의 전통으로 전해지는 돌봄 음식
누구에게나 ‘닭고기 스프’와 비슷한 음식이 있을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일본 만화에서는 주인공인 소녀가 입덧으로 고생하는 이복 언니에게 ‘토마토 으깨미’를 만들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토마토를 살짝 으깨서 갈아놓은 사과에 잘 섞어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다. 소녀는 이 음식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아플 때마다 가족들이 서로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는 걸 이모할머니로부터 배웠다. 토마토 으깨미는 집안의 전통으로 전해지는 ‘돌봄 음식’인 셈이다.
아플 때 먹을 수 있는 음식
올해 초 기관지염에 걸려서 일주일이 넘도록 앓았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자니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도 없는데다 목이 아파서 음식을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매일 죽만 먹었더니 평소 좋아하는 팥죽도 싫어졌다. 뭘 좀 먹어야 기운이 난다는 걸 머리로 알고는 있었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바로 토마토 달걀 스프였다.
토마토 달걀 스프 만들기
냉장고 채소 칸을 굴러다니던 토마토 두 개를 꺼내서 반으로 자르고 반달모양으로 토막을 냈다. 작은 냄비를 불 위에 얹고 식용유를 둘렀다. 간 마늘을 한 숟갈 넣어 달달 볶다 토마토를 넣어 함께 볶았다. 토마토가 익어가며 물이 나와 걸쭉해지면 수저로 토마토를 으깨고, 약불로 바꾸고 냄비에 뚜껑을 덮었다. 달걀 두 개를 잘 풀어서 토마토에 넣고 잘 섞이도록 휘저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토마토가 푹 익을 때까지 끓였다.
물 한 방울 넣지 않았지만 토마토에서 나온 물로 죽이나 스프처럼 보이는 요리가 완성되었다. 앞 접시에 덜어서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가락씩 떠먹으면, 토마토의 새콤함에 달걀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이 아픈 목을 자극하지 않아서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토마토달걀볶음과 다른 음식
내가 먹은 토마토 달걀 스프는 중식의 토마토달걀볶음과 재료와 요리법이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중식에서는 달걀볶음을 스크램블로 먼저 볶고 나중에 토마토에 살짝 섞어주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달걀이 토마토보다 양이 많아서 토마토보다 달걀이 주재료가 된다. 고소한 달걀 볶음에 토마토를 얹은 느낌이고 굴소스의 짠맛이 더해진다. 내 것은 볶음보다 스프에 가깝다. 시큼한 토마토 스프에 달걀이 어우러져 신 맛을 중화시키고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해준다. 새콤한 맛이 입맛을 살린다. 중식에서는 파 향을 내지만 마늘 향을 낸다는 것도 나만의 특색이다.
토마토 달걀 스프에 밥을 추가하자
한 끼 식사로 든든하게 먹고 싶을 때는 밥을 추가하면 좋다. 딱 국밥 느낌이 난다. 국에 밥이 더해지면 국물이 걸쭉해지면서 단맛이 돌아 아무 생각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다 먹게 되는 것처럼 토마토달걀스프에 밥을 더한 것도 그렇게 술술 들어간다. 먹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난다. 이제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나를 위한 돌봄 음식
이렇게 아플 때를 위한 저마다의 ‘돌봄 음식’이 필요하다. 가족의 돌봄을 받거나 배달 음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몸이 정상일 때는 잘 먹던 것도 아프면 이유 없이 안 먹히거나 목이 아파서 넘기기 힘들고, 맛이 안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럴 때를 위한 마지막 보루는 조리법이 간단한 ‘돌봄 음식’을 평소에 연습해두고 가족과 공유하는 것이다. 혼자 사는 경우에는 미리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 두면 비상시에 요긴하다.
‘돌봄 음식’은 평소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맛있고 영양분이 많으며 누구라도 만들기 편한 음식이어야 한다. 늘 냉장고에 있는 재료라면 더할 나위 없다. 나는 평소에 토마토를 즐겨 먹어서 언제나 냉장고에 토마토가 있다. 달걀도 마찬가지다. 달걀로만 삶아먹기도 하고 후라이 해 먹고, 국이나 라면에 넣거나 부침개 반죽에도 넣으니 냉장고에 떨어질 새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토마토달걀스프은 최적화된 돌봄 음식인 셈이다.
여름에 먹기 좋은 토마토
여름이 무르익고 있다. 날이 더워서 힘들지만 토마토가 싸고 더 맛있어지는 계절이라 반가운 마음도 든다. 다양한 토마토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묵직한 큰 토마토를 툭툭 잘라 먹다가 다음번엔 대추방울토마토를 먹는다. 단맛이 강한 노랑이나 주황 토마토를 발견하면 꼭 사야한다. 몸에 좋은 흑토마토는 비싸지만 가끔 산다. 토마토 달걀 스프는 맛이 진한 대추방울토마토나 큰 토마토로 만들면 더 맛있다. 껍질을 벗겨 먹으면 더 부드럽지만 토마토의 항산화성분는 껍질에 더 많다고 하니, 식감이 거칠더라도 가급적 껍질째 먹는 게 좋다. 방울토마토는 살짝 칼집을 내서 볶아주면 익으며 뜨거운 즙이 튀지 않아서 안전하게 요리할 수 있다.
폭염과 폭우로 여름철 날씨가 변덕스럽다. 어제는 얼음 넣은 커피를 마셨지만 오늘은 에어컨 바람이 춥게 느껴진다.
지금, 토마토와 달걀을 꺼내야 할 때다.
<토달의 레시피 : 토마토달걀스프 1인분>
1. 큰 토마토 2개와 달걀 2개를 준비한다. (방울토마토나 기타 다른 토마토로 대체해도 좋다.)
2. 토마토를 반을 가르고 반달모양으로 썬다. 토마토물이 가급적 흐르지 않도록 썰자.
3.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간마을 한 숟갈을 넣고 달달 볶는다.
4. 썬 토마토를 넣고 볶는다. 어느정도 토마토 물이 나와 걸쭉 해지면 약불로 바꾸고 뚜껑을 덮는다.
5. 달걀을 깨서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도록 휘젓는다.
6. 토마토에 달걀을 넣고 잘 저어준다.
7.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푹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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