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철원에..!! (철원농활 후기)
다시 철원에..!!
여러 해 텃밭 농사를 지으며 마늘처럼 월동하는 작물을 심어본 적이 없다. 그저 남의 밭 마늘 수확을 한다는 풍문만을 바람결에 전해들었을뿐.. 지난 철원 모내기 행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다시 찾은 철원에서 우리 일행을 맞은 건 무릎 높이를 훌쩍 넘은 마늘대가 무성한 마늘밭이었다. 마늘의 생산지를 꼽으라면 의성 혹은 서산 즈음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 철원에서도 마늘 농사를 제법 크게 짓고 있었다.

소규모로 차를 나눠탄 10여 명의 일행은 하지가 하루 지난, 그래서인지 새벽 5시반 이미 해가 밝게 떠오른 아침 철원으로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고속도로에 내려앉아 태양의 형체가 마치 달처럼 내려앉은 듯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우리를 실은 차는 철원으로 달렸다. 나는 지난 모내기도 첫 모내기이지만, 이번 농활 또한 첫 농활이라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 차량이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지만, 이미 도착한 일행은 마늘밭 농민과 어우러져 마늘 수확을 거들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것도 뒤로 미룬 채 엉덩이 방석을 차고 손바닥에 벌건 고무가 입혀진 목장갑을 착용, 바로 마늘밭으로 투입..
마늘 뽑는 작업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얼마 전 내린 비로 땅은 마늘 뿌리들을 순순히 내어 주었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방석을 끌어가며 마늘을 뽑는 동안 담소도 나누고 서로서로 참견도 할 수 있었으니 그저 일하는 동지애가 솔솔 피어나는 농활하는 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정도의 노동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즈음 지나 적절히 목이 마르다 심으니 아~~ 새참시간!! 인천에서 준비해간 간식은 닭강정과 소성주 그리고 철원농민회에서 준비해 주신 새참은 지역 오대쌀로 직접 빚어 판매하고 있는 대작막걸리와 두부와 돼지고기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 객은 객의 모습으로 현지인은 현지인의 모습으로 그렇게 어우러져도 즐거운 새참시간. 자신의 재능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 그의 선창에 따라 가벼운 게임도 하면서 몸도 마음도 풀어보고 오고가는 막걸리 잔에 취기도 오르니 다시 마늘 밭으로..
오전 우리가 투입된 마늘밭은 철원 농민회에서 공동으로 농사하는 곳으로 이번 우리가 수확한 마늘 일부는 직거래를 위해 가져오기도 했다. 수확 직후 마늘대를 손질하고 15키로 망에 담아 왔으니 필요하신 분은 얼른 서둘러 구매하시길~~
철원 지역을 흐르는 한탄강에 양미리가 나고 철원에서 농사한 벼를 탈곡한 마른 짚으로 엮어 말린 양미리가 그렇게 맛이 좋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순진하게 새겨 듣고 생선구이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잠시!! 이 글 읽는 독자는 그럴리 없겠지만, 양미리가 한탄강에서 잡힐 리만무하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길. 모내기 날 만났던 어르신의 이야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듣고 적었던 저만이 그분의 농을 진심으로 들었다는..
여튼 우리의 점심은 갖가지 생선구이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삶아서 무쳐나온 상추나물도 좋았고 진하게 끓여 뚝배기에 나온 시래기장도 맛있고 함께 앉은 분들의 이야기도 재미나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촌놈이 해벌쭉 농민과 농촌의 맛에 흠뻑 젖어드는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 이후 휴식이 없다면 더운 날 농사일에 숨이 멎어들 듯하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보면 끝없이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는 도대체 무슨 작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궁금증을 이번 농활에서 해결했다. 비닐하우스 안은 농사일에 지친 몸을 뉘어도 좋을 ‘커텐’이라고 부르는 천으로 천장과 벽을 감싸 더위의 침투를 막아 시원하고 쾌적했다. 농사일을 하다보면 당을 제때에 충전시켜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에 털어넣을 수 있는 양의 음료가 좋다며 차가운 레츠비 330ml작은 캔커피를 마시고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우리 중 몇몇은 고른 숨을 내쉬며 이른 아침 먼 길 온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고 일부는 농민의 질문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는 하우스토크가 있었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민에게 도시 농업이란 어쩌면 아이들이 어린 시절 소꿉놀이 하는 듯 가짜농사로 생각될 수 있을법도 한데 진지하게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들어주셨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10년 가까이 교류사업과 직거래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지만 이러듯 도시농업에 대한 진심어린 질문은 몇 해를 철원을 다니며 만남을 가진 사무국 선생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 속사정에 밝아지면 그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니 이번 농활과 우리가 나눈 담소는 서로를 알아가는 일석이조 윈윈의 만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짧은 휴식을 마치고 두 번째 농활은 철원농민회 사무국장님의 마늘밭.
‘아니, 왜 마늘종을 뽑지 않았지?’라며 막걸리 주식회사 대작 대표님의 밭주인을 핀잔하는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밭으로 내려갔다. 진심으로!! 명아주의 키가 나의 귀에 닿았고 마늘은 뽑을 때마다 흔들리는 마늘대가 얼굴과 머리를 후려치는 듯 부대꼈다. 그뿐이 아니었다. 토종 마늘과 섞어 심었다는 밭주인의 말은 우리를 뒤로 나자빠지게 할 만큼 토종의 매운 맛을 보게 했다. 마늘 심다가 손가락이 무뎌졌다는 말은 거꾸로 도구도 없이 깊이 박힌 토종 마늘을 깨느라 손가락 끝이 닳다는 걸로 바뀌어야 할 정도로 마늘 수 십 가락의 잔 뿌리는 땅의 깊이를 헤아려보겠다는 의지로 깊이깊이 뽑히기를 거부했다. 일부러 이곳에 우리 도시농부를 모셔온 건 아닌지.. 물론 철원농민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을 보는 탓에 자신의 밭을 돌볼 짬이 부족하고 애정 어린 동지애의 마음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니, 우리 도시농부들도 기꺼이 뒤로 나자빠져도 즐겁다. 자신의 밭에는 남을 들이지 않는다는 밭주인도 그날은 흔쾌히 우리를 맞이해 주시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민의 인심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수확한 양파 90키로그램 가까이를 인천 가는 차에 실어 주시니 그 마음이 감동이었다. 우리의 농활이 폐가 되지는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한 나에게는 안심의 사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쉼과 베품으로 한껏 부른 마음으로 마지막 농가에 손을 보태러 떠났다.
세 번째 농활 밭에 도착하니, 도시에 나가 사는 딸의 사위와 장성한 아들들까지 마늘밭에 불러 수확을 하고 계셨다. 새벽 6시부터 대가족이 수확을 시작하여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으나 여전히 밭에 일을 남겨두고 있었다. 우리 일꾼이 그들의 구세주가 된 것이다. 구세주는 나의 표현이 아니다. 농민의 말씀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 여러 대의 차가 밭으로 들어오고 10여 명의 일손이 밭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니 구세주가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남지 않은 일을 마치고 너무나 거창한 칭송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여 5분 거리에 자신의 집에 다녀올 것이니 잠시 기다리며 이전에 수확한 마늘쫑을 한껏 챙겨와 나눠주셨다. 농활의 마무리는 이렇듯 두 손 가득 무겁게 양파와 마늘쫑이 담긴 봉다리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보내는 아쉬움은 철원 농민이 인천으로 오시는 걸로 갈음하였다. 도시민이 농활을 오는 것이 때론 성가시게 느껴기도 했다는 솔직한 말씀과 함께, 그러나 이제는 당신들과 더욱 가깝게 교류하고 연대하고 싶다는 더욱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꺼내주시며 인천에 도시농부들을 만나러 오신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은 다르다. 나는 도시에서 아주 소박하게 농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겹겹이 둘러싼 산자락 아래 굽이 도는 강가 옆, 하루를 꼬박 일해도 티가 나지 않는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 농사가 언젠가는 이 땅에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도시농부인 나는 지금 그들의 구세주가 되고자 한다.
2025. 6. 24.
첫 농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김보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