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철원군 모내기] 나의 첫 모내기
철원군 통일논 모내기에 다녀왔다.
통일논이란 전국 49개 지역에 있는 평화를 상징하는 논으로, 이익의 일부가 통일관련 사업에 보태진다고 한다. 철원군 통일논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모내기와 추수에 도시민들이 농민들의 일손을 돕는 행사가 열리는데, 내가 참가한 것이 바로 모내기 행사였다.
나는 몇 년 전 인천으로 이사 오면서 인천도시농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활동에 공감하여 후원회원이 되었으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침 통일논이라는 취지가 좋고 손모내기에 대한 경험도 할 겸 후원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가하기로 했다.
요리에 대해 고민하다 먹거리나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요즘 제철 식재료가 풍성하게 나오는 시기라 어떤 요리를 할까 고민하다보니 먹거리나 식재료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언젠가는 텃밭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지만, 벼농사까지는 꿈도 못 꿨다. 벼농사는 물을 가두고 벼를 키우는 ‘논’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이성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더라도 벼농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 자주 놀러갔던 할머니 댁에서 벼 베기를 거든 적이 있고 대학 때 여름농활을 가서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기도 했지만, 모내기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요즘은 모내기를 대부분 기계로 한다고 들었다. 통일논 모내기에서는 맨 발로 논에 들어가 손모내기를 한다니 흔치 않은 기회였다. 햇볕을 가릴 챙 넓은 모자를 챙기고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일하기 편한 바지도 챙기며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철원평화공원에 도착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인천시청 근처에서 출발하는 단체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서 김밥 한 줄을 받아서 이른 아침의 시장을 달랠 수 있었다. 쉼 없이 달리니 두 시간 만에 철원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근처에 있는 철원평화공원에 도착했다. 모내기를 할 논은 민통선 안, 편의시설이 없는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화장실 가기가 어려우니 이곳에서 먼저 볼일을 봐야하고 접경지역이라 군인 한 명이 버스에 함께 타서 이동한다는 안내가 더해졌다.
철원평화공원은 철원평야를 굽어볼 수 있는 소이산 모노레일과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노동당사가 있어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지만, 총을 든 군인이 지척에 있고 북한땅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서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한반도의 현실을 실감했다.
화장실을 갔다 돌아오니 버스 안 빈자리에 낯선 이들이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통일논 모내기 행사에는 인천도시농업 뿐만 아니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다른 시민단체, 대학생 동아리 등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참가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개인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개인차는 민통선에 들어갈 수 없어서 철원평화공원에 개인차를 두고 함께 단체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군인과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함께 생전 처음 해보는 모내기를 하러 민통선으로 간다니, 분명 우리나라 땅인데도 낯설고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버스로 십여 분 달리니 하얀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져 있는 한반도기가 여기저기 꽂혀있는 통일논에 도착했다. ‘2025 철원군 통일쌀 모내기’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풍물팀과 철원군 농민들이 즉석에서 함께 구성한 풍물패가 풍악을 울리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여러 단체의 대표자들의 인사가 끝나자, 각지에서 모인 50여명의 사람들은 바지를 둥둥 걷고 무릎까지 빠지는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로로 긴 논에 사람들이 길게 한 줄로 서 있는 모습부터 장관이었다.
삽시간에 부드러운 진흙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한 발을 떼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진흙 속에 빠져본 게 처음이라 재밌기도 했다. 뙤약볕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더웠는데도 차가운 물속에 다리를 넣고 있으니 시원했다.
왼손에 한 손에 잡힐 크기의 모판을 잡고 오른손으로 5,6개의 모를 뿌리까지 뜯어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깊이로 모를 심었다. 논에 길게 한 줄로 된 못줄을 드리우고 못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묶여있는 붉은 끈에 맞춰서 모를 심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심어야지만 다음 줄로 갈 수 있었다. 단순 작업이지만 익숙지 않아 손이 느렸다.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까봐 마음이 급해졌다.
내 왼쪽은 능숙한 농민인데, 내 오른쪽 사람이 왼손잡이 도시민이라 나랑 작업반경이 겹쳐서 우왕좌왕했다. 모두가 오른손잡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심어서 손이 마주칠 일이 없는데, 왼손잡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는 터라 오른손잡이와 충돌이 있었다. 나는 왼손잡이 도시민에게 맞춰서 나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모를 심어나가고, 내 왼쪽 빈 곳을 능숙한 오른쪽 농민분이 채우시도록 손을 빼는 방법으로 충돌을 피했다.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허리 한 번 펴기 힘들었지만,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분들과 몇 마디 담소도 나누면서 모내기를 이어나갔다. 모인 인원이 많아서 한 시간도 안 되어 모내기를 끝낼 수 있었다.
지역 농민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식사와 지역 쌀로 만든 막걸리를 먹고 마셨다
다리와 팔에 묻은 진흙을 농수로의 물로 대충 닦고, 논 옆에 간이 테이블를 펼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 농민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식사와 지역 쌀로 만든 맛있는 막걸리를 배부르게 먹었다. 공간이 좁아서 서서 먹어야 했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모내기의 고단함과 자리의 불편함을 잊게 했다. 신선한 파프리카는 그냥 썰어놓기만 했는데도 달고 아삭해서 입맛을 돋웠고, 아무데서나 자라는 개망초를 무친 나물은 어찌나 감칠맛이 돋던지 주변에서 뜯어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남북의 물을 합치는 합수식과 지역 농민들과의 만남의 자리
식사를 하고 북한지역의 물과 인천에서 가져온 물을 모내기를 끝낸 논에 넣어서 남북의 물을 합치는 합수식을 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한반도의 통일을 통일논에서 물을 통해 먼저 이루는 의식이었고, 어린이들이 참가해서 더 의미를 있었다.
이후 자리를 옮겨 철원평화공원의 노동당사 뒤에 모여 지역 농민들과 간담회를 했다. 모인 인원이 많아서 세 무리로 나누어서 동그랗게 무리를 지었다. 우리 무리에서는 도시민과 농민들이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거나 각자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리고 행사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지역 막걸리를 만드시는 분이 계셔서 제조방법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마신 철원 막걸리 ‘대작’은 만들 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서 머리가 아프게 만드는 성분을 나오지 않도록 조절한다고 했다. 어쩐지 꽤 많이 마셨는데도 속이 부대끼거나 머리 아픈 게 없어서 신기했는데 이런 비밀이 있던 거였다.
모든 순간이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신선했다
첫 모내기, 그것도 민통선이라는 접경지역에서 하는 모내기는 모든 순간이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신선했다. 논 옆에 총을 든 군인이 서 있었고,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손을 맞춰 모를 심고 함께 술을 마셨다. 팔다리가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직접 논에 들어가 하나하나 모를 심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손발톱에 흙이 오래 남아서 슬리퍼와 여름 샌들을 한동안 신지 못하겠지만 그정도쯤이야.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먼저 식사 공간과 농민들과 간담회 장소가 협소했다. 내내 서서하는 모내기 후에 앉을 곳이 없어서 힘들었다. 모인 사람들 중에 아이도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늘 하나 없고 논과 밭이 펼쳐진 곳에 겨우겨우 좁게나마 공간을 마련해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놓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간담회는 심지어 아무것도 없이 노동당사 건물 뒤 소나무 밑 땅 위에 철퍼덕 앉아서 이루어졌다.
버스 안에서는 초여름이라 풀밭에 그냥 앉으면 벌레나 세균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돗자리나 깔개도 없이 그냥 바닥에 앉아야한다니 다소 어이가 없었다.
내년부터는 모내기를 하고 합수식을 한 후에 논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식사를 하고 간담회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나할 것 없이 진흙투성이라 실내가 어렵다면 실외에 천막과 테이블을 놓고 의자까지 갖추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테이블과 의자가 어렵다면 돗자리나 깔개라도 마련하면 어떨지 주최 측에 요청을 드리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철원군 통일논 모내기의 참가신청을 받은 인천도시농업의 전반적인 안내와 관리가 부족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화장실을 갔다 올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언제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안내가 없었다. 늦게 오는 사람들을 일찍 온 사람들이 무한정 기다려야 했다. 거기다 인천과 통일논을 오가는 버스에 인천도시농업 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가하는 다른 단체의 사람들이 있었고, 철원평화공원에서는 개인차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버스 안에 들어와서 통일논까지 이동했는데도, 이에 대한 사전설명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제지가 전혀 없었다. 그분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과한 장난을 걸며 주정에 가까운 소란을 피웠다. 막걸리에 대한 제한을 두시는 것도 제안 드린다. 맛있고 좋은 술이지만 너무 무한정으로 나와서 과하게 마시는 사람이 나오는 것 같다. 특히 단체 버스에 막걸리를 가지고 타는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란다.
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남은 모를 심은 화분을 가져왔다. 가을 추수 때까지 잘 키워서 잘 자란 모의 사진을 가져오면 농민회에서 쌀을 주겠다고 하셨다. 지금 우리 집에는 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일주일에 500ml 생수통 하나 분량의 물을 줬는데 화분받침에 물이 남아 있으니 충분한 걸로 보인다. 모내기의 경험을 주변에 나눴더니 가고 싶다는 이가 나타났다. 추수 때부터는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모내기와 다른 신선한 경험과 만남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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