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농사 이야기

[제18화: 상강] 서리 앞에서 콩을 거두고, 낙엽으로 흙을 덮다 — 겨울 앞의 마지막 갈무리

아메바!(김충기) 2026. 10. 23. 18:30

 

겨울 길목에 마지막 갈무리

길가와 공원안에 낙엽포대가 쌓여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가로수 밑에는 어김없이 낙엽이 쌓이고, 아침마다 누군가 그것을 쓸어 포대에 담는다. 포대는 길가에 줄지어 놓였다가 어디론가 실려 간다. 텃밭에서 사정은 반대다. 낙엽 한 줌이 아쉽다. 마늘 위에 덮고, 콩을 베어낸 빈 자리에 깔고, 겨우내 흙을 지켜줄 이불로 쓰려면 아무리 모아도 모자란다. 한쪽에서는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다른 쪽에서는 모셔 와야 할 재료이다.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절기, 상강(霜降)이다.

 

절기 이야기: 농사의 마감일, 서리 내리는 날

상강은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로, 올해는 10월 23일이다. '서리 상(霜)'에 '내릴 강(降)',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한로가 찬 이슬이 맺히는 때였다면, 상강은 그 이슬이 얼어붙기 시작하는 때이다. 서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밤새 식은 잎과 땅 위에 공기 속 물기가 하얀 얼음 알갱이로 붙는 것이다. 백로에서 이슬은 식으면서 태어난다고 했는데, 서리는 그 이슬이 한 걸음 더 식은 모습이다.

 

오래전 부터 상강은 마감 기한이었다. "조 이삭은 상강 넘으면 더 안 여문다"는 속담이 전한다. 서리가 오면 곡식이 더는 여물지 않으니 그전에 거두라는 말이다. "벼는 상강 전에 베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뜻이다. 「농가월령가」 9월령에도 이 무렵 들에서 벼와 콩 추수에 힘쓰는 모습이 나온다. 거두는 손이 가장 바쁜 때, 하늘이 정해둔 마지막 시한이 서리였다.

 

농사 이야기: 서리 전에 거두고, 거둔 뒤에 덮는다

상강은 벼와 콩을 서리 전에 거두어 마무리하는 때이다. 콩은 잎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면 꼬투리가 마르면서 알이 빠르게 수분을 잃는다. 꼬투리의 80~90%가 익은 색(담황색~갈색)으로 변한 뒤 7~14일이 지난 때를 수확 적기로 본다. 서리태처럼 일부 품종은 이 시기를 넘기면 꼬투리가 터져 알이 떨어지기 쉽다.

 

도시텃밭에서도 상강의 키워드는 갈무리이다. 한로때 콩과 들깨를 거두기 시작했다면, 상강에는 늦게 여무는 콩까지 마저 거두고 말리고 털고 가려내는 일로 이어진다. 거둔 콩은 2~3일 말려 알의 수분이 13~15%쯤 되었을 때 터는 것이 알맞다. 텃밭 규모에서는 비 맞지 않는 곳에서 바람이 잘 통하게 천천히 말리는 쪽이 안전하다.

 

이번 상강 앞뒤 날씨도 챙길 일이다. 지난 10월 22일에는 북서쪽 찬 공기가 내려와 아침 기온이 하루 만에 10도 안팎 떨어져 한파특보가 내렸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으로 따뜻했던 가을에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면서 고추, 가지, 호박, 바질, 깻잎처럼 서리에 약한 작물이 남아 있다면 이번 주 안에 거두게 좋다. 콩대는 비 소식 없는 맑은 날을 골라 베어 말린다.

상강에 텃밭에서 할 일

  • 콩 거둘 때 가늠하기: 잎이 누렇게 떨어지고 꼬투리 대부분이 갈색으로 변했다면 일주일에서 열흘쯤 더 지켜보고 거둔다. 기다리다 비를 만나지 않도록 날씨 예보를 함께 본다.
  • 이른 아침에 베기: 서리태처럼 꼬투리가 잘 터지는 콩은 이슬로 꼬투리가 눅눅한 이른 아침에 베면 알이 덜 튄다.
  • 말리고 털기: 베어낸 콩대는 비 맞지 않고 바람 통하는 곳에서 2~3일 말린 뒤 턴다. 망종에 이야기한 노린재 자국이 난 알, 쭉정이, 상한 알은 골라낸다.
  • 씨콩 따로 갈무리하기: 내년에 심을 콩은 크고 고른 알로 가려 더 바싹 말린다. 메주콩과 서리태를 섞이지 않게 이름표를 달아 보관한다.
  • 뿌리는 남기고 콩대는 눕히기: 콩 줄기는 뽑지 말고 밑동을 잘라 뿌리를 땅에 남긴다. 베어낸 콩대는 빈 자리 위에 눕혀 덮는다.
  • 마늘 심기 마무리: 아직 못 심었다면 10월 하순 전, 이번 주 안에 끝낸다. 심은 뒤에는 낙엽이나 볏짚을 두툼하게 덮는다.
  • 낙엽 모아 맨흙 덮기: 콩을 거둔 자리, 걷어낸 열매채소 자리 등 맨흙이 드러난 곳에 낙엽을 넉넉히 깐다. 겨울 비바람에 흙이 상하지 않는다.
  • 서리 전 마지막 거두기: 서리에 약한 고추 끝물, 바질, 깻잎이 남았다면 오늘내일 거둔다.

서리 앞에서 거두는 두 콩 — 메주콩과 서리태

메주콩, 장을 담그는 콩

메주콩은 알이 굵고 노랗다. 된장, 간장, 두부의 바탕이 되는 콩이다. 경기도 기준으로 콩의 성숙기는 10월 초중순이니, 한로 무렵 거둔 포기가 있을 것이다. 상강에는 털고 말리고, 노린재가 침을 꽂은 알을 골라내는 갈무리가 이어진다. 장을 담글 콩은 크고 상처 없는 알만 고른다. 알을 고르는 데 들이는 시간이 이듬해 된장 맛을 좌우한다.

서리태, 끝까지 기다리는 콩

서리태는 검은 껍질의 콩이다. 밥에 얹고, 콩자반을 조리고, 여름 콩국수에 쓴다. 메주콩보다 늦게 여무는 편이라 상강 무렵 마지막으로 거둔다. 소서에 순을 질러준 포기라면 곁가지마다 꼬투리가 달렸을 것이다. 여문 꼬투리는 거두는 때를 넘기면 터져 알이 떨어지므로, 날씨와 꼬투리 색을 번갈아 보며 이른 아침에 베는 것이 요령이다.

콩이 지나간 자리

콩은 혼자 일하는 작물이 아니다. 뿌리를 뽑지 않고 땅에 남겨두면 뿌리혹이 그대로 흙으로 돌아간다. 베어낸 콩대는 낙엽과 함께 덮어 겨울 이불로 쓴다. 콩은 거두고, 콩이 만든 흙은 남기는 셈이다.

 

내년에는 콩을 심었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좋다. 콩도 같은 자리에 이어 심으면 탈이 나는 작물이다. 대신 콩이 지나간 자리에는 열매채소처럼 거름기를 반기는 작물을 들이면 흙이 한숨 돌린다. 같은 작물을 이어서 심지 말라는 것과 돌려짓기로 이득을 보는 부분을 한번에 실천하는 것이다.

 

콩을 거두고 나니 포대에 담겨 나가던 낙엽이 다시 눈에 걸린다. 땅을 덮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덮을 것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리는 끝이 아니라, 덮어야 할 때를 알리는 신호이다. 길가에 놓인 낙엽과 공원에 쌓여가는 낙엽은 가져다 쓴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한다. 쓰레기로 취급받는 낙엽포대는 텃밭에서는 흙을 돌보는 좋은 자원이 된다. 올가을 우리 동네 낙엽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