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농사 이야기

[제17화: 한로] 찬 이슬 아래, 마늘 한 쪽을 묻다.

아메바!(김충기) 2026. 10. 6. 13:04

[제17화: 한로] 찬 이슬 아래, 마늘 한 쪽을 묻다.

 

찬 이슬이 내리는 절기, 한로(寒露)이다.

 

절기 이야기: 이슬이 서리가 되기 전에

한로는 24절기 중 열일곱 번째 절기로, 올해에는 10월 8일이다. '찬 한(寒)'에 '이슬 로(露)', 찬 이슬이 내리는 때이다. 백로가 흰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였다면, 한로는 그 이슬이 한층 차가워지는 때이다. 조상들은 이 무렵을 이슬이 서리로 바뀌기 직전으로 보았다. 같은 이슬인데 한 달 사이에 온도가 달라졌다.

 

산과 들에는 국화가 피고 단풍이 짙어진다. 오곡백과를 거두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이 이 즈음에 드는데, 올해는 양력 10월 19일이다. 조상들은 이날 국화꽃을 얹어 전을 부치고 국화주를 마시며 가을을 보냈다. 서리가 코앞인데도 꽃을 피우는 국화를 보면서 겨울맞이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한로 상강에 겉보리 간다"는 말이 전한다. 한로와 상강 사이에 겉보리를 갈아 겨울을 날 곡식을 땅에 맡긴다는 뜻이다. 거두는 손이 한창 바쁜 때에, 다른 손은 벌써 겨울을 넘길 씨앗을 묻고 있었다.

 

농사 이야기: 거두는 달, 심는 달

전통적으로 농가에서 한로는 가을걷이가 막바지에 이르는 때이다. 늦벼를 베고, 콩과 고구마를 거두고, 거둔 곡식을 말려 갈무리한다. 같은 시기에 보리와 마늘처럼 겨울을 나는 작물을 심는다. 거두는 일과 심는 일이 한 달 안에 겹치는 것이 한로 농사의 특징이다.

도시텃밭도 마찬가지이다. 여름 열매채소를 걷어낸 자리가 하나둘 비기 시작한다. 맨흙으로 두면 찬비와 바람에 흙이 상하니, 그 자리를 겨울 나는 작물로 채우는 것이 한로시기 텃밭 일의 기본이다. 중북부 지방에서 한지형 마늘을 심는 때는 10월 상순부터 하순까지로 알려져 있다. 너무 일찍 심으면 겨울이 오기 전에 2차 생장이 일어나 벌마늘이 생기기 쉽고, 너무 늦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 마르거나 얼기 쉽다. 한로를 시작으로, 10월 하순 전에 마치는 것이 기준이다. 한로는 한 해를 거두는 절기이면서, 내년 하지를 미리 심는 절기이다.

 

날씨도 눈여겨볼 때이다. 지난 10월 1일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서울 아침 기온이 14도까지 떨어졌고, 개천절 무렵에는 10도 안팎까지 내려가 올가을 들어 가장 낮을 것으로 예보되었다. 아침 기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신호이다. 서리를 맞으면 잎이 상하는 고구마 줄기와 고추, 바질, 깻잎은 그전에 거두어 두는 편이 좋다. 잎 작업은 이슬이 마른 뒤에 한다.

 

한로에 텃밭에서 할 일

  • 씨마늘 고르기: 하지에 캐서 말려둔 마늘 중 통이 크고 모양이 바른 것을 고른다. 한지형은 쪽 하나가 4~5g쯤 되는 것이 알맞다. 쪽은 심기 직전에 뗀다. 일찍 떼어두면 마르고 병이 옮기 쉽다. 곰팡이가 슬었거나 상처 난 쪽은 골라낸다.
  • 마늘 심을 자리 마무리: 백로 때 넣어둔 퇴비가 한 달 사이 안정되었을 것이다. 아직 넣지 못했다면 심기 1~2주 전까지 넣고 깊이 갈아 흙을 부드럽게 풀어둔다. 물이 고이는 곳은 두둑을 높여 물 빠질 길을 낸다.
  • 마늘 심기: 줄 간격 15~20cm, 포기 간격 10~15cm로, 깊이는 쪽 길이의 두세 배(5~7cm)로 심는다. 뿌리 날 둥근 쪽이 아래, 뾰족한 쪽이 위로 가게 세워 심는다. 폭 1m 두둑에 줄을 넷 내면 길이 3m에 100쪽쯤 들어간다. 심은 뒤 물을 흠뻑 준다.
  • 양파 모종과 자리 준비: 양파는 씨앗을 뿌릴 때가 이미 지났다. 건강한 모종을 사서 심는 쪽이 현실적이다. 정식은 평균 기온이 15도쯤 되는 때가 좋으니, 지금은 모종 구할 곳을 알아보고 마늘 옆에 심을 자리를 만들어 두는 때이다.
  • 고구마 거두기: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둔다. 맑은 날 흙이 보송할 때 캐고, 줄기는 베어 눕혀 멀칭재로 쓴다.
  • 고추 끝물 정리: 남은 풋고추는 서리 오기 전에 따낸다. 걷어낸 줄기는 뽑지 말고 베어 눕힌다.
  • 배추·무 살피기: 이슬이 마른 뒤 잎 뒷면을 살펴 배추흰나비 알과 애벌레를 손으로 훑어낸다. 촘촘한 곳은 솎아준다.
  • 콩·들깨 거두어 말리기: 꼬투리가 갈색으로 여물고 줄기가 마르면 맑은 날 거둔다. 콩 줄기는 뿌리째 뽑지 말고 잘라서 눕혀두면 뿌리혹이 흙으로 돌아간다. 들깨는 씨를 받아 이름표를 달아 말린다.
  • 낙엽 모으기: 마늘과 양파를 덮어줄 낙엽과 볏짚, 베어낸 풀을 미리 넉넉히 모아둔다.
  • 밤 기온 기록 이어가기: 백로 때 시작한 기록에 아침 최저기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간 날을 표시한다. 서리를 알리는 신호가 된다.

 

하지에 거둘 것을 한로에 심는다 — 마늘과 양파

하지에 캔 마늘과 양파는 지금 땅에 들어가 내년 하지 무렵 다시 나온다.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 문턱에서 알을 굵힌다는 점이 같다. 같은 파속(파와 같은 식구)이라 닮은 점도 많고 서로 조심할 점도 같다.

 

마늘, 한 쪽이 한 통이 되기까지

한지형 육쪽마늘은 심고 캐기까지 여덟아홉 달이 걸린다. 그 긴 시간이 시작되는 때가 지금이다. 씨마늘은 너무 크면 벌마늘이 되기 쉽고 너무 작으면 알이 잘다. 중간쯤 되는 쪽을 골라 세워 심는 것이 첫 번째 요령이다. 거꾸로 비스듬히 심으면 싹이 늦고 통이 비뚤어진다.

 

깊이도 중요하다. 너무 깊이 묻으면 통이 작아지고 너무 얕으면 겨울 사이 흙이 말라 벌마늘이 생기기 쉽다. 심고 나면 낙엽이나 볏짚을 두툼하게 덮어준다. 겨울 흙의 마름과 추위를 막아주고, 봄이면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동반작물로 좋은 딸기, 상추 곁에 두면 병충해를 줄여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반대로 콩이나 완두 같은 콩과 작물 곁은 피한다. 마늘의 항균 물질이 콩 뿌리혹박테리아의 일까지 막아서이다. 감자를 캔 자리는 다른 식구인 마늘이 들어가기에 알맞다. 하지편에서 감자 뒤에 토마토·가지를 피하라고 했던 것과 이어진다.

 

양파, 해가 길어져야 굵어지는 작물

양파는 알이 굵어지려면 하루 낮의 길이가 일정 시간 이상 되어야 한다. 중만생종은 13시간이 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동안은 뿌리와 잎으로 힘을 모으고, 봄이 되어 해가 길어지면 비로소 알이 부푼다. 해가 가장 긴 하지 무렵 거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긴 낮이 양파 한 알을 키워낸다.

 

양파는 씨앗을 뿌려 모종을 만드는 시기가 9월 중하순에 끝난다. 한로에는 모종을 사서 심는 쪽이 안전하다. 웃자라지 않고 줄기가 단단한 것을 고른다. 정식 후에는 물을 충분히 주어야 동해와 마름을 막을 수 있고, 너무 깊이 묻지 않아야 알이 잘 굵는다.

 

양파의 좋은 이웃은 당근과 상추이다. 망종에 심은 당근 이랑 곁에 한 줄 심어두면 서로의 냄새가 해충을 헷갈리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마늘과 양파, 파는 한 식구이다. 같은 자리에 이어 심으면 같은 병이 도지니 파속 작물을 2~3년 심지 않은 자리를 골라 심는다. 마늘과 양파는 겨울 동안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잎은 짧고, 땅은 얼고, 지켜보는 농부만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괜찮다. 땅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다음 연재는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18회, 10월 23일경)이다. 찬 이슬이 마침내 서리로 바뀌는 날, 텃밭에서 거둘 것과 덮어줄 것을 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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