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농의 자연농사] 항아리를 묻어라 — 2천 년 전 농법으로 키우는 강화오이

[소자농의 자연농사] 항아리를 묻어라 — 2천 년 전 농법으로 키우는 강화오이
인류최초의 농서 범승지서(범승이란 사람이 쓴 농서)에 기록된 구전법을 이용한 토종오이(황과)재배방법 : 구덩이 재배법
오이 줄기 사이사이에 페트병이 하나씩 꽂혀 있어요. 처음 보면 그냥 쓰레기인 줄 알거든요. 근데 이게 2천 년 전 농법이에요.
설명드릴게요.

물이 없는 곳에서 나온 방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가 있어요.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쓰인 『범승지서(氾勝之書)』예요. 범승이라는 사람이 직접 쓴 농서거든요. 이 책에 오이 재배법이 나와요.
범승이 살던 곳은 지금의 중국 황토고원이에요. 비가 안 오는 곳이죠. 황토로 된 건조한 땅, 염류가 쌓이고, 가뭄이 심하고, 농업용수가 귀한 곳이에요. 그 환경에서 오이를 키워야 했던 거예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집중해라
범승지서에 기록된 방법은 구전법(區田法)이에요. 밭 전체를 갈지 않아요. 일정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집중적으로 거름과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에요. 은(상)나라 탕왕 때 큰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이윤(伊尹)이 처음 시행한 방법이라고 전해져요.
오이 재배에서 핵심은 항아리였어요. 구덩이 가운데에 항아리를 묻고, 입구는 지면과 같게 맞추고, 항상 물을 채워두는 거예요. 항아리 뚜껑을 덮어서 증발을 줄이고, 항아리 둘레 네 곳에 오이 씨를 심어요.
항아리 속 물이 조금씩 흙으로 스며들어요. 뿌리 주변이 계속 촉촉하게 유지되는 거죠. 위에서 뿌리는 물이 아니라 뿌리 가까이에서 올라오는 물이에요. "잎이 젖지 않으니 병이 줄고, 증발이 적으니 물도 아끼고, 뿌리는 깊이 자라고." 오늘날 농학에서 지중관수(地中灌水) 또는 점적관수라고 부르는 원리인데, 2천 년 전에 이미 실천되고 있었던 거예요.
흙이 물을 붙잡는다
구전법에서 구덩이에 거름을 충분히 넣는 이유는 영양분 때문만이 아니에요. 유기물이 풍부한 흙은 수분을 오래 저장해요. 뿌리가 깊게 자라고, 미생물이 활발하게 움직여요. 흙이 살아있으면 적은 물로도 작물이 버텨요.
강화오이가 크거든요. 긴 건 45센티미터에 무게가 약 2킬로그램이에요. 이만한 과실이 달리려면 뿌리가 깊고 흙이 건강해야 해요. 많은 물이 아니라 제대로 된 흙이 필요한 거예요.
도시텃밭에서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어요. 큰 페트병이나 다공성 화분을 땅에 묻고 물을 채워두는 거예요. 볏짚이나 풀로 멀칭해서 증발을 줄이고, 장마철엔 배수를 철저히 해서 뿌리가 숨을 쉬게 해주면 돼요.
노랗게 익어야 진짜 오이다
오이가 노랗게 익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해요. 상했나, 오래됐나. 근데 원래 오이는 노랗게 익는 거거든요.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초록색 오이는 아직 덜 익은 거예요. 씨앗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익으면 껍질이 노란색으로 변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오이를 황과(黃瓜), '누렇게 익는 열매'라고 불렀죠. 호과(胡瓜), 과(瓜)라고도 했어요. 시대와 문헌마다 이름이 조금씩 달랐거든요.


조선 농서도 같은 말을 한다
황과는 조선 농서에도 빠짐없이 나와요. 박세당이 쓴 『색경(穡經)』 상권 「종제과채법(種諸瓜菜法)」에 오이 재배법이 체계적으로 기록돼 있어요. 『산림경제』와 『임원경제지』에도 파종과 재배, 이용, 종자 보존에 관한 경험이 전해지고 있고요.
조선 시대엔 병해 없고 생육 좋은 개체에서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심는 자가채종이 일반적이었어요. 종묘사가 아니라 내 밭에서 내 씨앗을 받아 이어가는 거죠. 그 씨앗이 지금 강화오이(SD0544)로 남아있어요. 인천 강화 지역에서 이어져온 조선오이예요. 옛이름으로는 황과, 지금은 강화오이라고 불러요.
페트병 하나가 땅속에서 조금씩 물을 내주고 있어요. 항아리 자리에 페트병이 있는 거예요. 2천 년 전 황토고원에서 범승이 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