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컬쳐 읽기 모임 5회차 - 숲이 먼저 알고 있었다

숲이 먼저 알고 있었다
퍼머컬처 읽기 모임 5회차 — 14장·15장
벡엘루앙(Bec-Hellouin) 농장에는 600제곱미터짜리 큰 비닐하우스가 있다.
퍼머컬처 사람들답지 않게. 처음엔 그들도 넣지 않았다고 한다. 플라스틱 덩어리를 농장 한가운데 들여놓는다는 게 퍼머컬처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노르망디는 추웠다. 온실 없이는 작기가 너무 짧아 농장 자체를 운영할 수 없었다. 결국 들여놨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난방은 하지 않는다. 화석 연료는 때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작된 것들이 있다. 온실 안에 닭장을 들이고, 포도나무 12그루를 심고, 바이오차 화덕을 만들고, 입구에 연못을 파고, 닭장 지붕 위에 재배 상자를 올렸다. 온실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온실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타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계였다.
농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번 5회차에서 우리는 14장과 15장을 읽었다. 14장은 짧다. 퍼머컬처의 짧은 역사와 기본 원칙을 담은 도입부다. 15장은 길다. 구역(조닝), 섹터, 기복, 기후와 미기후, 층위, 천이, 가장자리 효과까지 — 퍼머컬처 디자인 개념 전반을 벡엘루앙 농장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퍼머컬처는 무엇보다도 디자인의 기술이다.
저자 페린은 숲 이야기를 꺼낸다. 숲은 약 4억 년 전에 등장했다. 사람의 개입 없이도 번성한다. 갈이도, 거름주기도, 물주기도 없고, 누구도 고생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그런데 생산하는 생물량은 우리가 경작하는 농생태계의 두 배에서 네 배에 달한다. 토양을 만들고, 탄소를 저장하고, 산소를 내보내고, 받은 빗물의 상당 부분을 다시 대기로 돌리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을 품는다.
어디서도 노동이 보이지 않는데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요소들이 서로에 대해 적절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요소의 폐기물이 다른 요소의 자원이 된다. 온실에서 나온 푸성기가 닭 사료가 되고, 닭들은 그것을 훌륭한 퇴비로 바꿔 잡풀 씨앗까지 먹어치운다. 닭장 지붕 위에 올린 재배 상자는 온실 안 높은 자리에서 약 5도 높은 기온을 누리며 모종을 키운다. 화석 에너지 한 방울 쓰지 않고 얻는 그 몇 도가, 봄 초입 모종 시작에 귀중하게 쓰인다. 이렇게 설계된 시스템은 더 복잡해졌는데 운영하기는 더 쉬워진다.
열대에서 온 개념, 온대에서 쓰려면
15장에서 크레올 정원 이야기가 나왔다. 카리브해와 인도양 도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농사 형태 — 감귤류, 바나나, 덩굴식물, 채소가 층을 이루며 함께 자라는 방식이다. 한정된 공간에 여러 식물을 빽빽이 섞어 심는 미니 숲정원의 형태다. 벡엘루앙에서는 이 짜임을 본떠 온실 안 틀밭에 크레올 정원을 꾸몄다.
퍼머컬처에서 '숲정원'은 핵심 개념 중 하나다. 1980~90년대에 영국의 로버트 하트(Robert Hart)가 온대 기후에서의 숲정원을 연구하고 적용했고, 이것이 퍼머컬처 안에 흡수되었다. 모임에서 오선경 선생님이 이 맥락을 짚어 주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나왔다. 열대에서 온 개념을 온대에서 그대로 쓰는 게 맞는가. 우리 기후와 문화에 더 맞는 방식이 따로 있지 않을까.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대신 해경 님이 실제 이야기를 꺼냈다.
수락산 아래 숲밭 이야기였다. 처음엔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한다. 나무 아래에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을까. 숲인데 거기서 먹을 걸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몇 년을 해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랬다. 온대에서는 수정이 필요하다. 키 큰 교목을 없애고 임관을 낮추고, 덩굴성 식물은 빼서 5층 숲밭으로 만들었더니 햇볕 문제가 해결됐다. 온대의 햇빛으로도 된다.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 선조들도 사실 이미 했다. 옛날 집 뒤뜰을 떠올려보면 — 살구나무, 앵도나무, 장독대 옆 봉선화, 토란, 맨드라미. 단일 재배가 아니라 서로 궁합이 맞는 식물들의 조합이었다. 이름을 숲정원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십 미터 차이가 정말로 큰 차이를 만든다
15장에서 가장 오래 이야기가 머문 개념은 구역(조닝)이었다.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자주 돌봐야 하는 것을 가까이 두고, 덜 돌봐도 되는 것은 멀리 둔다. 매일 들여다봐야 하는 텃밭과 닭장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역 1에, 강건한 채소와 베리 덤불은 구역 2에, 가끔 방문하는 잡목림은 구역 4에, 인간이 발을 들이지 않는 야생 공간은 구역 5에.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믿거나 말거나, 몇십 미터의 차이가 정말로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벡엘루앙 농장이 처음 설계될 때, 텃밭과 작업장 겸 생활 건물 사이가 250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 때문에 생긴 이동 시간과 체력 손실이 결국 매출 손실로 이어졌다. 나중에 텃밭 한가운데 작업장 겸 온실(serre-atelier)을 지어 이것을 구역 0으로 삼았더니 작업 효율과 삶의 질이 함께 달라졌다. "처음 디자인 단계에서 이런 요소를 고려했더라면 수천 유로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쓴다.
온실로 가는 길에 자갈을 깔기까지 거의 10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겨울마다 10센티미터 진창을 수레를 밀며 다녔다. 자갈 하나 깔았더니 작업의 안락함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간단한 것을 10년이 걸려서 했다고.
설계는 처음에 하는 것이다. 나중에 고치려면 열 배의 시간이 든다.
가장자리에서 가장 많이 산다
15장 후반부에서 가장자리 효과 이야기가 나온다. 두 생태계가 만나는 경계 지점은 각각의 한가운데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숲과 초지가 만나는 자리, 물과 땅이 만나는 얕은 수면, 두 환경이 섞이는 전이 지대. 그 접경에서 생물 다양성과 생산성이 가장 높아진다.
자연만 그런 게 아니다. 책은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덧붙인다. "인간 사회는 서로 부대낄 때 풍요로워지며, 만남은 반짝이는 창의를 북돋아 줍니다."
모임도 그런 가장자리 같은 자리다. 농사짓는 사람, 도시에서 텃밭을 꾸리는 사람,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사람. 서로 다른 배경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책 한 줄보다 더 오래 남는다.
혜경 님의 수락밭 이야기처럼.
다음 회차는 16장부터다. 디자인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장이다. 이번에 짚고 넘어간 구역, 섹터, 기복, 미기후 개념들이 실제 설계 과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보게 될 것이다.
숲이 4억 년 동안 스스로 설계해 온 방식을, 우리는 이제 막 배우고 있는 중이다.
